불교공부

형님의 출가出家

qhrwk 2025. 1. 1. 09:32

 

♣형님의 출가出家-능인스님♣ 

나에겐 친구 같은 형님이 있었다. 

불교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곤 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 마을은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 아랫마을인데,

형님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고운사 고금당선원 (古金堂禪院)에 가서 정진을 하였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에서 속인(俗人)이 같이 정진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다.
그 당시 주지스님으로 계셨던 근일 스님의 배려가 있었지만,
그것을 수용해 주신 스님들의 결정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당시 고운사 고금당선원에서는 하루에 18시간씩 정진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정진에 애를 쓰다보면 작은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날카롭게 되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 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속인을 선방에 넣어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행에는 승속(僧俗)이 따로 없다'고 하시며 입방(入房)을 허락하신 근일 스님과 대중 스님들의

 너른 마음으로 형님은 그와 같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형님은 늘 출가(出家)를 결심하고 있었지만 점점 늙어 가시는 부모님 걱정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초여름날 밤이었다. 나와 형님은 마을 어귀로 나가 다리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에게 출가(出家)할 결심은 확고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나는 형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허락을 하지 않으시면 평생을 기다릴 겁니까? 이 세상에서 부모의
허락을 얻어 출가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부처님도 부왕(父王)의 허락을 얻지 못하고

한밤중에 도망을 친 것은 중생들에게 시범을 보인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외동아들이었는데도 떠났습니다. 출가에 대한 결심만 확고하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떠나십시오."

형님은 나의 말을 듣더니 용기가 난다면서 내일 아침에 떠나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우리 둘은 시내에 일을 보러 나간다고 하고서 아침 첫차를 타고

동네를 빠져 나왔다.

그 길로 형님과 나는 헤어졌다. 어느 절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어느 절로
간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 뒤로 아버님은 아들을 찾아 고향 근처의 절들을
샅샅이 찾아 다니셨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던 아버님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숨만 쉬며 밤을 지새우셨다.

몇 달 뒤, 방생법회를 다녀오신 어머님께서 형님이 해인사로 입산했다는 것을
확인해 오셨다. 행자들이 산에 가고 없어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름과 입산
날짜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으신 아버님은 나를 부르셨다.
"내가 가서 데려올 수도 있지만 절을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니 네가 가서 꼭 데리고 오너라."
나는 아버님의 특사가 되어 해인사로 갔다. 행자 생활을 하고 있는 형님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형님의 마음은 확고부동하였고 아버님이 찾아올 수
없는 다른 절로 옮기겠다고 하였다. 나는 특사의 임무을 완수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그대로 보고를 드렸다.

아버님은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셨다.

평생 동안 농사를 지으시며 잔병 한 번 앓으신 적이 없었던 아버님께서 어느날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길래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이미 돌이키기 힘든 심한 중병이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시더니 결국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을 가져온

것이었다. 아버님은 수술을 원치 않으셨고, 채 6개월이 안 되어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온

 스님 아들에게  아버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였다.


 "어디에 있든지 최선을 다하거라. 열심히 정진하거라." 마침내 아들의 출가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마지막 짐을 벗어버린 것이기도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형님스님은 선방에서 결제 중이었다.
선원에서는 결제 중에는 절대로 산문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율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형님 스님은

'내가 출가한 것은 아버님을 제도하고자 한 것인데 이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 왕생극락

하시도록 염불이라도 해드려야 한다'고 대중스님들을 설득하여 허락을 얻고 고향으로 

달려오셨다.

형님스님은 밤을 새워 지성껏 염불을 하셨고 가족들도 같이 염불을 하였다.
어느 날, 길을 가시던 부처님께서 죽은 사람의 뼈를 보시고 절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부모의 은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다.
너무나 한량없는 부모의 은혜를 들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선 '경전을 널리 보시하라'고 하셨다.

세속적 시각으로 보면 형님과 나는 막중한 불효를 저질렀다.

그 불효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길은 열심히 정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익을 돌려드리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