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존중과 공경이 세상을 밝힌다

qhrwk 2025. 1. 1. 08:51

 

♣존중과 공경이 세상을 밝힌다 ♣

평화로운 오후, 길을 걷고 있던 사람이 대형 광고판이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사람은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가 광고판이 머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복잡하던 길, 복잡하던 마트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 광고판 아래를 걷고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불행하게도 그 사람에게, 그 순간에그 광고판이 떨어지게 되었을까?

일부러 어떤 사람이 광고판 위에 서 있다가그 사람을 맞추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떨어뜨려 정확히 그 사람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불교에서는 우연이란 없다고 말한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인연이요 업이다.

다시말해 그 사람은 그 아래를 정확히 그 시간에 걷도록 되어 있었고,그 때에 맞춰 

그 광고판은 추락을 할 수밖에 없던 인연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런 인연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그 사람이 그 때 죽어야 할 업도

아닌데,아무 이유 없이 우연으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생사라는 것은 정확하게 인연

따라 오고 갈 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어떻게 그 광고판은 그 사람이 그 때 죽을 업이란 것을 알고그 순간, 정확하게 그 사람을 

맞췄단 말인가?

그 인과응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과관계라면 이해가 가지만,사람과 물질 사이에서 어떻게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가?그

러나 사람과 물질 사이에서도 인과관계와 인연법은 성립한다.

이 우주의 법칙은, 이 법계의 인연법이라는 법칙은인간에게만, 혹은 생명이 있는 

유정물(有情物)에게만 한정되는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뿐 아니라, 유정물 뿐 아니라모든 무정물(無情物)에게까지 확장되는 우주의 

법칙이다.그것이 바로 우리가 유정물 뿐 아니라 무정물에게도 자비와 존귀함과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그 차가 자체 엔진고장을 일으켜 시동이 꺼지면서 고속도로에서

차가 갑자기 서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그래서 대형사고가 났고,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그렇다면 그 사고에 연관된 많은 이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우연으로

그 사고를 당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 사고가 날 만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사고가 날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마침 그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소멸한다.

우연은 없다.

그렇다면 고장 난 자동차 엔진이모든 인연법과 인과응보를 환히 알고,사고가 날 모든 사람들의 

운명과 업을 따져 본 뒤그 순간에 그 일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꾸며낸 것인가?
 그렇다.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해 그 자동차 엔진이 그런 일을 직접 했다기 보다는 이 법계의 인과응보라는 이치가

그 일을 계획하고 자동차 엔진은 거기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큰 틀에서 인연법이라는 법계의 큰 진리의 흐름 속에서나고 죽으며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이 쯤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자.광고판이나 자동차 엔진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몫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사람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나무와 풀과 개미와 이끼들조차 모두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며,그들을 결코 인간 아래에 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과 인간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인간에게 죽음을 당할 수 있듯,인간이 동물에게도 죽음을 당할 수 있고,식물에게도,

심지어 위에서 보았듯 무정물에게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그들과 인간은 인연법의 차원에서

서로 동등하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고장 나기 직전의 차였는데 주행 중에는 괜찮았고,다행히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량이 

고장 났다”고.그래서 사고 없이 집까지 무사히 잘 왔다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아주 좋은 차를 타고 있었으면서도 차량이 문제를 일으켜 집까지

오는데 몇 시간이 더 걸렸을 수도 있다.
 
늦게 오는 것도 정확히 그럴 만한 인연이고,사고 없이 빨리 오는 것도 그럴 만한 인연이다.

사업가가 아주 중대한 회사의 업무로 해외 사업가와의 미팅에서 차량 사고로 늦게 가는 바람에

그 큰 투자 사업을 망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량이 하필이면 왜 그 중요한 순간에 고장이 나는가.

차량 결함만 아니었어도 그 사업가는 대박이 났을 것인데.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차 고장만 아니었다면 완전히 대박이 났을까.

혹시 법계에서 그 사업이 대박이 나기에는 아직 이른 때라서,아직 그 사람이 성숙하지 않았거나,

복이 부족했거나, 아직은 그 그릇이 작았거나 하는 이유로 차량 고장이라는 인연을 통해 

그 사업을 뒤로 미룬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모든 것을 차의 탓으로 돌린다.

흥분해서 차 바퀴를 발로 걷어 차거나,혹은 그 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사는 것으로 울분을 

풀곤 한다.그러나 그것은 차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한 내 문제다.

차가 바로 그 때 고장이 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주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 법계 우주가 각본을 쓰고 그 차는 단지 조연을 했을 뿐이다.

아니 법계와 차와의 공동감독에 공동주연의 연극이라는 편이 옳겠다.어쨌든, 주연이었든 

조연이었든 내 사업을 망친 직접적인 몫을 한 녀석은 자동차다.

그러니 자동차를 실컷 미워해도 좋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미워하는 만큼 법계의 일부분인 자동차도 나를 미워할 것이다.

손가락이 내 몸의 일부분이듯,자동차는 이 우주법계의 일부분이다.

손가락이 아프면 나 또한 아프듯 자동차가 아프면 우주도 아프다.손가락이 아파 내가 아프면

어떻게든 손가락에게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아프면 우주에서도 자동차를 아프게 한 원인 제공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