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과학문명 노예로 전락한 인류 구하는 길은 조사선

qhrwk 2025. 1. 3. 08:45

 

 

♣ [서옹스님] 과학문명 노예로 전락한 인류 구하는 길은 조사선♣


오늘날 현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미래를 내다볼 때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잡한 인류의 생활속에 훌륭한 정신이 정립되지 않아 여러 가지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정신원리에 바탕하여 세계 역사를 새롭게
재창조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조사선입니다. 

선의 밝힘을 통해 세계역사 문명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가를 서로 대화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대중은 근기가 얕아 자신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전통이 사라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으며 허무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허무주의를 자각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의식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 의식은 주관과 객관이 대립해 있습니다.

따라서 의식세계에서는 주관주의적 입장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의식세계는 반드시 초월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절대모순에 빠지는 의식을 ‘망식’이라고 합니다.
선에서는 이러한 절대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의식을 투과하고, 무의식도 투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을 투과하는 방법이 바로 ‘공안’에 의한 참선수행입니다. . 

보통 화두에는 1천7백 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든 하나를 투과하게 되면 모두 투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두는 의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무의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해결하면 인간의 참모습, 자유자재한 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지혜로 화두를 공부하려고 하면 이미 틀리는 것입니다. 

첫째, 화두는 주·객관없이 한덩어리가 되는 의심, 의단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생각이 들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의심하다 보면 순일하게 의심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둘째 과정입니다. 

화두를 공부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의심이 주·객관이 없는 순수한 의식이었다면 거기서 더 용맹스럽게 나아가면 

의식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그럴수 있나’ 의심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초등학생때 1백미터 경주를 해본 것을 생각해 보세요. 

1백미터를 뛰는 동안에는 오직 뛰는 그 한생각 뿐이었지 않습니까. . 

무의식에서 성성하게 나아가면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하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해 인간을 완전히 초월해버린 경지입니다.

시 공간도 없고 생사도 죄악도 없는 자유자재한 자리입니다.

그러니 구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하고 자유로운 자리가

있습니다.

그 깨달은 자리를 다시 투과하는 것입니다.
처음 깨달은 자리가 일체를 투과한 자리라면 다시 일체가 현성된 자리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또 투과하면 일체를 현성하고 일체를 투과하는 그것이 원래 분명해집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들어가고 또 들어가게 되면 무한히 투과하고 무한히 현성하면서 아주 자유자재한

자리가 됩니다.

이러한 선의 경지와 현대문명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살아있는 종교라면 이것에 대해 대답을 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편리하게 살게됐지만 살아가는 것이 복잡해지고 제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제정신을 잃은 것은 주체성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잃고 주체성도 없이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통해 자유자재하게 되면 주체성을 확립하여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구제하는 길은 선밖에 없습니다. 

서양의 종교철학은 모두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은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자비화합을 바탕으로 서로 함께 살아가자는 정신입니다.

‘나’라는 것이 ‘무아(無我)’로 의식도 투과하고 무의식도 투과하니 걸림이 없습니다.
‘아(我)’가 없고 대립이 없습니다. 

하나로 통해 자비화합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자비심으로 모든 대립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선의 입장입니다.
그 길이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길입니다.

출처 :매사와법진 원문보기▶ 글쓴이 : 法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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