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趙光祖(1482-1519)絶命詩조광조(趙光祖,)
愛君如愛父
애군여애부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憂國如憂家
우국여우가
나라 걱정하기를 집안 근심처럼 하였다.
白日臨下土
백일임하토
밝은 해 아래 세상을 굽어보사
昭昭照丹衷
소소조단충
내 단심과 충정 밝디 밝게 비춰주소서.
급진과격개혁을 추진하다 훈구파의 역공(기묘사화)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초로처럼 사라져간 비운의 풍운아.
조광조(趙光祖, 1482년 8월 23일/음력 8월 10일 ~ 1520년 1월 10일/1519년 음력 12월 20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학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1]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유숭조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사림파의 정계 진출을 확립하였다.
중종의 훈구파 견제 정책에 의해 후원을 받아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언관 활동을 하였고,
성리학 이론서 보급과 소격서 철폐 등을 단행하였다. 성리학적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 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한다.1519년 반정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궁인들에 의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역모로 몰려 전라남도 화순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다. 후에 기묘명헌 중 한 사람이다.
개혁 정책을 펼치다가 희생된 개혁가라는 시각과 급진적이고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양립하고 있다. 관직은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겸 동지경연성균관사에 이르렀고, 사후 인종 때 복관되고 명종 때에 몇 번의 논란이 일다가 선조 초에 기대승 등의 상소로 증 대광보국숭록
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다.
한때 그와 가까웠으나 뒤에 그의 정적이 된 남곤과, 그의 정적 중 한사람이기도 했던
김전 역시 김종직 학파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은 그의 문하생 백인걸을 통해 율곡 이이에게 전해졌으며, 명종 말엽에 사림파는 훈구파를 몰락시키고 집권에 성공하면서 성인화,
성역화된다. 1591년(선조 24) 광국원종공신 1등관에 추서되었다.

※ 예전(倪田)의 <柴門相送圖> (1907年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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