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말근대 화가 심심해(沈心海)의 <相送柴門>
濟危寶歌 [제위보가] - 李齊賢[이제현]
浣紗溪上傍垂楊
완사계상방수양
빨래터 시냇가 위 수양버들 아래서
執手論心自馬郞
집수논심자마랑
백마 탄 도련님과 손잡고 정 나눴네.
縱有連簷三月雨
종유연첨삼월우
처마 끝 삼월 봄비 계속 내린다 해도
指頭何忍洗餘香
지두하인세여향
손끝에 남은 향기 차마 어이 씻으랴.
(제위보가는 원래 고려시대 빈민 구제기관인데 여기서는 고려 속요)
압운은 버들 양楊, 사내 랑郞, 향기 향鄕으로 시의 운은 볕 양陽인 평기식 칠언 절구 詩.
제위보가는 원래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다.
그 속요(俗謠)를 익재 이제현 선생께서 한역한 것인데
재미있는 여심(女心)을 잘 나타낸 노래이고 아주 맛깔스런 노래이다.
은근한 멋이 수백 년 후의 우리조차 빙긋이 웃게 만든다.
쌍화점의 가사를 연상시키는 구절은 '내 손목을 잡았다.'는 구절이다.
남여의 관계는 손목을 잡는데서 시작을 한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으나 이제현(李齊賢)선생의 한역시와 작품이 지어진 경위가
고려사 악지(樂志)속악조(俗樂條)에 전한다. 이 글의 조선시대 해설에 따르면 한 부인이
죄를 지어 고려시대에 빈민이나 행려자들을 구호하는 일을 맡은 관청인 제위보에서
일하다가 자기 손목을 외간 남자에게 잡혔는데 그 치욕을 씻을 길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 노래를 지어 원망하였다 한다.
이 작품은 여인의 정절과 부덕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고 조선의 유가 사대부들은 풀이를
한다. 자기들 편리할 대로 왜곡을 했지만 이제현의 한역시는 그와는 정 반대다.
즉 이른바 조선 사대부들이 말하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내용인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유자들의 노래의 해설이
익재 선생님의 한역시와 서로 어긋나는 것은 왜일까?
고려사를 편찬한 조선 초기 유학자들이 유가적 이념에 맞게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해설을 달아놓았든가, 아니면 원래 해설과 일치하는 다정한 민중의 노래를 이제현 선생께서
본래의 의도에 맞추어 독창적으로 번안하였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답답하고 고루한 조선의 주자학파들은 지나치게 교조적이 되어 원래 인간의 성정을
억누르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으며 남자들은 성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송나라의 주자(朱子) 보다 한 술 더 떠서
인간의 타고난 성정을 인정한 고려 속요를 고려시대의 역사로 남기기는 남겨야 하겠는데
그대로 옮기자니 욕을 먹겠고 할 수 없이 얼토당토 않은 해설을 갖다가 붙인 것이다.
빨래터 시냇가 위 수양버들 아래서
백마 탄 도련님과 손잡고 정 나눴네.
처마 끝 삼월 봄비 계속 내린다 해도
손끝에 남은 향기 차마 어이 씻으랴.
당연히 아가씨의 들뜬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이래야 본래의 의미가 되살아 난다.
'완사계'란 냇가 빨래터이니 당연히 여자들이 모여서 빨래를 했을 것이고.
총각과 풍류객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냇가에는 수양버들이 잘 자란다.
수양버들이 봄 바람에 한들한들 날리면 여자들의 가슴에도 봄바람이 일렁인다.
여자들 역시 은근히 남정네가 수작을 걸기를 기대하는 곳이 빨래터이다.
'춘삼월의 비'라는 대목이 더욱 이 시를 재미있게 만든다.
춘삼월에 내리는 비는 그 세척력이 가장 좋다.
초가의 처마 밑으로 떨어진 물은 더더욱 좋다.
예전에는 무공해시대라 빗물을 받아서 먹기도 했고 빨래도 했다.
처마에서 떨어진 그 세척력 좋은 물(잿물)이 있는 집에까지 돌아와서도
백마 타신 낭군님 생각이 간절하다는 표현이 맛깔스런 재미있는 속요이다.

※ 청대(淸代) 화가 왕야매(王冶梅)의 <柴門月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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