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qhrwk 2025. 9. 28. 07:32

 

- 지리산 칠불사 운상선원 바깥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에 글귀가 씌어져 있다.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의 게송으로 알려져 있다.

塵勞?脫事非常
진로형탈사비상
생사 해탈하는 것이 보통 일 아니니

緊把繩頭做一場
긴파승두주일장
화두를 단단이 잡고 한바탕 애쓸지어다

不是一番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한기(寒氣)가 한번 뼈속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어찌 코를 찌르는 짙은 매화 향기를 얻으리 

得樹攀枝未足貴
득수반지미족귀 
나무를 찾아 가지를 잡음은 그리 귀한 일 아니니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벼랑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을 줄 알아야 대장부라네

 

 

※ 근현대 중국화가 유해속(劉海粟)의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1962年作)

 


-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은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아내로 맞아 슬하에
9남1녀를 두었다. 그 가운데 아들 일곱이 외숙(外叔) 장유화상(長遊和尙/일명 寶玉선사)을 따라 출가했다. 

장유화상은 허황옥의 오라버니로 황옥이 가락국으로 올 때 그를 수행해온 불교 승려다.
이들 일곱 왕자는 장유화상의 지도아래 각고의 수행 끝에 모두 성불하니 지리산 반야봉
 남쪽 800m 언저리에 있는 칠불사(七佛寺)다. 수로왕이 일곱 왕자의 성불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이 곳에 큰 가람을 짓고 칠불사(七佛寺)라 이름했다 한다. 

 

이 때가 서기 103년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으로 알려져 있다. 

서기 372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堅)이 승려 순도(順道)를 비롯한 사절단을 보내 불교를 

전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보다 270년 앞서 가락국에 불교가 들어왔고,

 칠불사라는 사찰까지 세워졌다 하니 기존의 고구려 전래설(북방전래설)이 무색해지는 형국이다.
 
칠불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운상선원(雲上禪院)이라는 수행처가 있다. 

이곳은 옛 운상원(雲上院)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라 한다. 

운상원은 통일신라 때 음악의 명인이었던 옥보고가 거문고를 배우고 새로운 악조(樂調)로 

노래를 지은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운상원 위에 

옥부대 또는 옥보대라는 대(臺)가 있다. 장유화상이 일곱 생질(甥姪)을 지도하며 

수행하던 곳이라 한다.
장유화상의 속명인 보옥(寶玉)을 거꾸로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름만 봐서는 옥보고와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산(西山)·부휴(浮休)·초의(草衣) 등 

뭇 선사들이 수행의 자취를 남겼고, 근현대에 와서는 용성(龍城) 효봉(曉峰) 금오(金烏) 

서암(西庵) 일타(一陀) 청화(淸華) 등 고승들이 거쳐간 곳이 운상선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