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조(落照)
암행어사 박문수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지은 시
落照吐紅掛碧山
낙조토홍괘벽산
지는 해 붉은 빛을 토해 푸른 산에 걸려 있고
寒鵝尺盡白雲間
한아척진백운간
줄지어 날아가는 갈가마귀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네.
問津行客鞭應急
문진행객편응급
나루터 길을 묻는 나그네 갈 길이 급해지고
尋寺歸僧杖不閒
심사귀승장불한
절 찾아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가 바빠 지구나.
放牧園中牛大影
방목원중우대영
목장에 풀어 놓은 소들의 그림자가 커지고
望夫臺上妾低鬟
망부대상첩저환
언덕 위에 지아비를 기다리는 여인의 쪽진 머리가 숙여진다.
蒼煙枯木溪南里
창연고목계남리
계곡 남쪽 마을에선 고목 사이로 푸른 연기가 솟아오르고
短髮樵童弄笛還
단발초동농적환
단발머리 초동이 피리 불며 돌아온다.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인가?
사람이 지은 시가 아니라 신이 지은 시라 할 정도로 절찬을 받았던 시이다.
이 시는 암행어사로서의 전설적인 인물인 박문수가 과거에 합격할 때 지은 시라 하여
‘암행어사 박문수 등과시’라고 한다.
과거에 응시하러 추풍령을 넘다가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시제를 알려주어 시를 짓다가 마지막 한 구에 막히자 노인의 가르쳐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소론의 영수인 이광좌에게서 수학한 후 1723년(경종 3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 설서(設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영조 즉위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削職)되었다.
1727년에는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자 사서에 등용되어 영남안집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했고,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사로 도순문사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전공을 세워 경상도 관찰사에 발탁되고,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으로 영성군(靈成君)에 봉해졌다. 1730년 참찬관에 이어 호서 어사로 나가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썼으며, 1734년에 진주사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앞서 안동서원을
철폐시킨 일로 탄핵을 받아 풍덕(豊德) 부사로 좌천되었다.
1741년(영조 17년) 어영대장을 거쳐 함경도 진휼사로 나가 경상도의 곡식 1만 섬을
실어 와서 기민(飢民)을 구제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다음해 병조 판서, 1743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이듬해 황해도 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다. 1749년
호조판서가 되어 양역의 폐해를 논하다 충주 목사로 다시 좌천되었다.
그 후 영남 균세사(均稅使)를 거쳐 판의금부사·세손 사부를 지내고 1752년 왕세손인
의소세손이 죽자 약방제조로 책임을 추궁 받아 제주도에 안치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암행어사의 이미지를 띠고 있는 인물이나 실제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기간은
1년 정도라 하고, 일설에는 그가 정식 왕으로부터 왕으로부터 암행어사로
임명받은 적은 없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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