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qhrwk 2025. 10. 21. 06:36

※ 청대(淸代) 화가 장웅(張熊)의 <魚樂圖> 선면(扇面)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閑居少隣並
한거소린병
한적한 거처는 이웃이 적고

草徑入荒園
초경입황원
풀 덮인 오솔길로 황폐한 동산에 들어선다.

鳥宿池邊樹
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僧敲月下門
승고월하문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過橋分野色
과교분야색
다리를 건너니 들 색깔이 나눠지고

移石動雲根
이석동운근
돌을 옮기니 구름 뿌리가 움직인다.

暫去還來此
잠거환래차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幽期不負言
유기불부언
유거에서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네.

‘이응의 유거에서 지은 시(題李凝幽居)’라는 제목의 이 시는 ‘松下問童子’ 시로 유명한
가도(賈島:779~843)가 지은 시이다.
가도는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범양范陽 사람으로 자字는 낭선(浪仙 혹은閬仙)이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찍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출가 시 법명은 무본(無本)이었다.
한유(韓愈), 맹교(孟郊), 장적(張籍) 등과 교유하면서 시의 명성(名聲)을 얻었고, 

한유에게 시재(詩才)를 인정받았다. 그는 환속하여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837년 쓰촨 성(四川省) 창장 현(長江縣)의 주부(主簿)로 시작한 그의 관직생활은 결국
 쓰촨 성 푸저우(普州)의 사창참군(司倉參軍)에 머무는 데 그쳤다.

그는 승려로 있을 때부터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는 시구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
매우 고심을 하며 시를 지었다 한다. 표현이 날카롭고 간결하며 자연스러운 것이 가도시의

특징이다.이 시에서 퇴고(推敲)라는 말이 나왔다. 

퇴고는 한문으로는 推敲라고 적으며 개별 한자의 뜻은 밀 추자로 때로는 퇴로도 읽는다. 

다음 글자는 두드릴 고敲’이며, 직역하면 밀고두드린다는 말로, 마지막으로 문장을 다듬어 

마무리 짓는 것을 퇴고라 한다.
이 퇴고라는 말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가도가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한 어느 날 나귀를
타고 장안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는 시구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밀 퇴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생각해 낸 것이 ‘두드릴 고敲’자였다.


그러고 보니 또 어쩐지 퇴자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퇴와 고를 두고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그만 당송 8대 문장가이며 당시 서울시장격인 경조윤京兆尹 한유韓愈의 

행차와 부딪쳤다. 가도는 시구의 글자에 골몰하다 미쳐 행차를 몰라 길을 비키지 않았다. 

병졸이 소리치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한유 앞으로 끌고 갔다.
가도는 글자를 생각하다 행차를 몰라 말에서 내려 길을 비키지 못했다고 사정을 설명하자 까닭을 

알게 된 한유는 화를 내긴 커녕 오히려 가도의 참다운 창작 태도를 찬양하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퇴자보다 고자가 나을 것 같소.”라고 말했다. 작은 소리로 인하여
오히려 큰 정적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가도는 고(敲)자를 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로부터 글을 다듬어 마무리 하는 것을 퇴고(推敲)라 하게 되었다. 가도의
유작으로는 <장강집長江集>외 작은 시집 3권이 있고, 그밖에 <시격詩格>,
<병선病蟬>,<당시기사唐詩記事> 등이 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장대장(張大壯)의 <魚樂圖> 성선(成扇) (1940年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