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長恨歌(장한가): 긴 탄식의 노래

qhrwk 2025. 11. 18. 06:39

양귀비(楊貴妃)와 당(唐)현종(玄宗)장한가(長恨歌)는

당(唐)나라 6대 왕 현종(玄宗:AD685--762)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한 120행
840자로 된 장시(長詩)이며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읊은 백거이(白居易)의 대표적
서사시(敍事詩)이기도 하다.

황제가 양귀비(楊貴妃)의 교태에 넋이 나가 나랏일을 팽개치고 주독에 빠졌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크고 작은 반란(叛亂)이 일어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안록산(安祿山)의 난(亂)"(절도사로 있던 안녹산(安祿山)과
그의 부하 사사명(史思明)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난 이라고 하여 "안사의 난" 이라고도
한다.)으로 현종은 궁궐로 쳐들어 오는 반란군을 피해 촉나라로 피난을 가던 중
안록산 일파에 겁을 먹은 황제의 근위병들이 양국충(楊國忠: 양귀비의 4촌오라버니,
일설에는 6촌오라버니라는 설도 있으나 틀린 말이다)을 죽이고 이어 양귀비 마저
처단할 것을 황제에게 강력히 요구하자,현종은 어쩔 수 없이 눈물로 이를 허락하고 만다.

양귀비의 4촌오라버니 양국충(楊國忠)은 양귀비가 현종(玄宗)의 엄청난 총애를 받음에
따라 그의 후광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및 시어사(侍御史)라는 직책으로 황제를
가까이서 보필하는 고위 관직을 얻었으며"國忠"이라는 이름은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다. 이와 더불어 15개의 주요 관직및 직책을 겸직해 그 권세가 나라 안팎을
뒤흔들었다고 문헌은 적고 있다.

아무튼사랑하는 양귀비가 눈앞에서 근위병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현종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낸다. 이때 현종의 나이는 71세 였고 양귀비는 38세 였다.

 

 


원래 양귀비(楊貴妃)는 현종의 열여덟 번째 아들 수(壽)의 비(妃)였다.
그녀는 수와 5년 동안 아무 탈 없이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그런데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병으로 죽자.
맘에 드는 美女를 찾다가 그만 아들의 비(妃)인 양귀비가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선 아름다운 자태에 첫눈에 반해버렸으니... 이런 염병할~~결국은 며느리를
빼앗아 자신의 비(妃)로 만들었고 곧바로 그녀의 두 자매까지도
비(妃)로 맞아들였다.

이때 현종의 나이는 60세 였다.이리하여 10여 년 동안 꿈같은 몽롱한 시절을 보낸다.
한편 이무렵 양귀비는 현종을 설득해돌궐족 출신의 젊은 장수 안록산(安祿山)을
양자로 맞아들여 아들로 삼았으나실재로는 양귀비와 은밀한 연인사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어쨋거나 양귀비의 든든한 후광을 등에 업은 안록산은 곧바로 절도사에 임명되었고
천하에 두려울게 없는 권세와 호사를 누렸으며 20만의 병력을 이끄는 병권까지 거머쥐게 된다.

황제의 정치가 이 모양이니 나라 꼬라지가 어찌 되갔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일
아닌겠는가~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나고 뜻 있는 선비들의 상소문이
빗발치자,그러잖아도 시기와 질투로 항상 눈에 가시로 여겼던 안록산은 
양국충(楊國忠)을 제거 할 절호의 호기로 보고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 잡는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을 총애하던 양귀비와 현종을 

배반하고 그의 측근인 사상명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이른바 "안록산의 난"이다.안록산이 이끄는 반란군이 파죽지세로 황궁을
점령하며 밀려오자현종은 양귀비의 고향인 산중 오지 사천땅(옛 촉나라)으로
황급히 피난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