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長恨歌(장한가): 긴 탄식의 노래

qhrwk 2025. 11. 18. 06:54

<양귀비 전용 독탕>

 

 


 - 주(註) -
장한가(長恨歌)는 비파행(毘琶行)보다도 더 널리 알려진 詩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이 詩를 읽어 보면 그리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좀 유치하지 않느냐는 생각마저 드는 점도 있다.
그런데 불후의 명작이니... 최고의 걸작이니 하는 말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당시의 글과 시는...
당(唐)나라 중엽부터 고급관리들을 중심으로 시문학(詩文學)이 크게  번성하였고詩라는 개념이

체계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요즘이야 백과사전이니국어사전이니 하는 단어와 숙어집이 넘쳐나는 새상이지만당시는 詩니

文學이니하는 말조차 불모지였던 시절에 단어나 고사성어를 만들고 애용한 건 과거시험을
통해 등용 된 학문 깊은 관리들과 시인(詩人)및 문장가들로,사마천의  사기(史記)를비롯한 역사서와

전기및 전설을 읽고 들으면서 만들어 낸 고사성어와 단어들이시와 문장을 대부분 장식했었다.
표현의 언어들이 극도로 빈약하던 시절이고 보면 이해가 된다.
후세 문인들은 당(唐) 송(宋)의 명망 높은 詩人들의 詩와 글을 빌어 와  인용 하는걸당연시 했고

또 자랑으로 여겼다.

 

당(唐) 송대(宋代)의 유명 시문들이 중국도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와서는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림(儒林)을 중심으로한 학자층에서 원시(原詩)를
읽으며 주석서까지 배껴서 읊고 똑같이 흉내를 내며 글과 시를 썼었다.

이백 두보 도연명 백거이등의 시를 특히 줄겨 읽다보니 인용 또한 많았었다,
따라서 당시 唐 宋시절의 시의 형식이나 은유및 기법들은 불변의 틀로 여겼으며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글줄께나 공부하는 유생(儒生)들은 밤새워 외우고 쓰면서 감탄을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오언(五言)이니 칠언(七言)이니 하는 틀과 은유적 기법들은 한시(漢詩)의 변치않은

주요 요소들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당시의 유명 詩들이 名詩로 추앙받았던 이유들이며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봐도 큰 오차는 없지 않나 싶다.

 

<화청지 표지석>


나는 한글보다 한문(漢文)을 일찍 익혔다.
체계적으로 배운 건 없고 형들이 공부하는 어께 너머로 천자문(千字文)과 기초
문장들을 홀로 익히다 보니.두서 없는 글이 됐고 짜집기같은 누더기 잡식이 된 것이다.
그나마도 오래도록 사용을 않다보니 잊은 글 또한 태반이다.그 와중에 듬성듬성
낯익은 글들이 보이는 건 유년의 추억 어린 짧은 학습으로 인한 앙금이며
이렇게나마 두서 없는 번역을 한 점 스스로이 대견케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파행에서도 밝혔듯이 부족하고 미약한 점들은 넓은 아량으로 너그러이 용서를
구할 뿐이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