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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5장 함께 가는길(3)

qhrwk 2026. 4. 29. 07:42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5장 함께 가는길(3)

 

깊은 ‘마음의 손바닥’으로부터 무량한 공양구를 뿜어내는 광명처럼, 찰나의 순간에 모든 중생들에게 공양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온 원효에게 의상의 질문은 이어졌다. “광대한 지혜라고 하는 것이 곧 비유하자면, 마치 그물코마다 걸린 인드라망의 구슬 하나 하나가 다른 모든 구슬의 빛을 동시에 비추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구슬 하나를 보는 그 찰나에 전체 그물을 다 보는 것이라고 말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상은 화엄경 <현수품>에서 현수(賢首)보살이 보리심(발심)과 청정한 행을 닦는 과정에서 얻는 무량한 공덕과 신통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보살이 이 깊은 삼매에 들어 모든 중생의 마음과 우주의 섭리를 한순간에 꿰뚫어 본다고 하는, 즉 가장 작은 단위(刹那)를 통해 가장 큰 전체(法界)를 보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아주 정밀한 고속 카메라가 세상의 움직임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보듯,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과 현상을 가장 미세한 시간 단위에서 평온하게 지켜보는 상태와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효는 벌떡 일어나 봇짐을 덜렁 들어 어깨에 들쳐 매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곧 전체인 것이요! 마치 우리가 저 서라벌에서 마시던 찻잔 속에는 그 순간 내리쬐던 태양과 그 빛을 잠시나마 가렸던 구름과 허리의 고통을 감수한 농부의 땀이 함께 들어있음을 찰나에 느끼는 것이고, 그리고 저 바다의 한 방울 물에는 말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함께 스며있다는 것이어서 결국은 그러한 과정 속에 결과가 함께 들어 있다는 인과동시(因果同時)의 부처님 말씀이 아니겠오? 본시 부처님의 가르침(道)은 툭 트여 있어서 걸림이 없고(廓爾無礙), 그 형상은 텅 비어서 고요할 따름이지요(湛爾虛寂)...그런데 사람들은 좁은 안목의 아상(我想)으로 한쪽만을 옳다고 주장 하거나(一曲之士), 혹은 수행을 하되, 편협 되게, 혹은 목석같이 가만히 앉아서 다리를 꼬고 눈만 감고..하하하...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뜻에서 궁극적으론 참으로 이 세상의 대덕존(大德尊)이신 여러 부처님들에게 매 순간 감사하고, 또 부지런히 공양해야 되지 않겠오이까? 하하하... 괜한 이야기가 길어졌구려...나도 오직 모를 뿐이오! 어서 오늘 저녁을 보낼 잠자리나 구해 봅시다.”


결국 원효의 이야기는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의 누각에서 본 것은 특별한 마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온 우주가 이미 완벽하게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었다. 의상도 얼떨결에 같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면서, 생각하기를 ‘사형의 말씀을 따르면, 성불한 뒤에 안락(安樂)을 갖겠다는 것도,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모두 시간의 환상일 뿐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결국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선재동자의 첫 발자국(發心)속에 이미 부처의 결과(成佛)가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되는구나... 참으로 사형 말씀의 의미가 깊다...나도 더욱 공부해서 부처님의 말씀의 이치를 분명히 알고야 말 것이다...’ 법담은 불꽃같이 일어나서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치 포효하는 두 사자의 기개를 보는 듯했다.


원효는 걸어서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면서 의상스님의 손을 지긋이 잡으며 “찰나 속에 영원을 담고, 티끌 속에 우주를 담는 화엄의 시선으로 본다면, 우리가 대화를 나눈 이 짧은 시간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소중한 인연의 조각일 것이오. 선재동자가 무한한 행원을 세웠듯, 우리도 그렇게 하길 바래 봅시다. 의상스님.” 참으로 따듯하고 깊이 있는 법담의 마무리였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육체적 괴로움은 뒤로하고, 오로지 우주의 향성(香聲)을 듣고자 하는 두 수행승의 지고(至高)한 이야기는 이렇게 다음을 기약하고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원효는 걸어내려오며 다시 장난기 있는 말투로 “그대는 아직도 당에 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게요? 하하하...”


원효의 물음에, 의상이 잠시 진지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 구름 사이로, 붉은 햇살이 서쪽 바다 쪽으로 길게 기울고 있었다. 마치 붉은 양팔을 양쪽으로 길게 뻗어 의상을 그 품에 꼭 껴안으려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성인의 말씀을 수행이 깊은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 계시는 지엄(智儼)스님께 직접 듣고, 배워서 ‘화엄’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분명히 알고 싶습니다. 사형...” 원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항포에는 당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여기저기 드나들었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속의 장안은, 천하의 스승들이 한자리에 모인 배움의 바다였다. 법상종, 삼론종, 천태종, 화엄종이 서로 다른 언어로 부처의 마음을 해석하고 있었다. 논쟁이 끊임없이 피어나도, 그것이 곧 진리를 향한 정진이라고 할 것이다. 의상은 그곳이라면, 사상의 혼탁을 뚫고 근원을 명확히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상의 가슴속에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루를 더 걸어 드디어 그들은 당항포 언저리에 이르렀다. 해안의 얕은 포구마다 상선과 군선이 드문드문 정박해 있었다. 당항성의 석축은 멀리서도 위세를 드러냈다. 산마루를 에워싼 성벽은 바다로 향한 신라의 결의이자, 삼국이 쟁탈전을 벌였던 출입문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둘은 항만에서 멀지 않은 토굴 같은 곳에 겨우 피곤한 몸을 누였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축축한 기운이 흙벽을 타고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