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6장 물속의 별을 보다 (제1권 終)

qhrwk 2026. 4. 29. 07:46

 

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6장 물속의 별을 보다 (제1권 終)

 

아직은 어두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토굴에서 원효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깊은 생각에 접어 들었다. ‘내 마음이 어제는 '청정한 감로수'라는 그림을 그렸었고, 오늘은 '더럽고 썩은 물'이라는 그림을 그렸구나. 어둠 속에서 마신 것은 인골의 물 그 자체였는가, 아니면 '맑은 물’이라고 믿고 마신 나의 마음의 작용(用大)이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짐짓 지금껏 내가 그려낸 환영에 속아 당나라라는 신기루를 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진정한 지혜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는 스스로 자문에 자문을 더하며 바닥에 잠시 무릎을 꿇었다. 동굴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쳐다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대답해 주는 듯한 환청이 들였다. 원효는 눈을 감고 들었다.

 

"마음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그 마음으로 능히 모든 세상을 그려내나니, 오온(五蘊)이 마음을 따라 생겨나서 어느 법도 만들지 않는 것이 없듯이,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니라. 산천초목과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일월성신과 우주법계가 모두 이 마음이 만든 것이니, 마음이 안에 있느니, 밖에 있느니, 따질 일이 아니니라.” 꿈에서 환희롭게 맞이했던 바로 그 자비스러운 얼굴을 지닌 부처님들과 천신들의 마음 울림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떴고, 마음속 밝은 빛은 언제나 존재함을 알게 되었고, 이 고독의 순간에도 심연 속 나와의 깊은 연결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기보다는 더욱 더 ‘나’ 자신과 하나가 되어감을 느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마음으로 온갖 것을 만들고 온갖 일을 다 하다니... 그렇다면 결국은 그 마음이 들어서 온갖 선과 악을 짓고, 천당과 지옥을 짓기도 하고, 행복도 불행도 만들고, 기쁨과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원효는 이틀 밤새 너무나도 많은 마음의 현상들을 경험하고는, 결론에 가까운 확신에 찬 각성의 시를 그 자리에서 읊었다. “마음이 일어나면 일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내가 어제 겪은 토굴과 무덤이라는 그 상념들은 결국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그렇다! 꿈에서 스쳐가듯 들었던 명칭(名稱)여래의 마니궁전과 보왕(寶王)여래의 청정궁전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인 것이다(一心)! 흠... 지혜의 부처님의 몸을 성취하되(成就慧身), 그것은 결국 다른 데서부터 말미암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성 청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不由他悟)라는 것을 일찌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거늘...” 원효는 어렴풋이 화엄경의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의 구절을 떠올리자, 새벽 별빛과도 같은 각성의 찬란함이 토굴의 새벽, 모든 어두운 기운들을 밖으로 말끔히 쓸어내 버리고 있었다.

 

해가 떠오를 즈음, 날씨는 화창했다. 원효는 이미 토굴에서 나와 먼바다를 바라보며, 밝은 해를 위로하여 연신 절을 올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객지에 머물러야 할 의상에 대한 하염없는 축복을 기원하는 뜻에서일까 아니면 이 순간 모든 부처님께 올리는 감사의 마음인 것인가. 그때 마침 의상이 떠날 채비를 단단히 하고는 밖으로 나와서는 사형의 그 진지한 모습을 보고는 “이제 곧 배가 떠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서 서두르시죠. 사형...”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항구 쪽에선 연신 북소리가 울렸다. 의상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지난번과는 달리 아무런 걸림돌 없이 무사히 당나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효는 하던 절을 정성스럽게 마무리하고는, 의상을 돌아보며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당나라에도 부처가 따로 있지 않고, 서라벌에도 부처가 따로 있지 않은 것 같소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가 곧 연화장(蓮華藏)이라! 저는 굳이 바다를 건널 까닭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의상의 가슴이 세차게 흔들렸다.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아무런 문맥 없이 시작한 원효의 말을 들은 의상은 의아해 하며 다시 캐물었다. “어떤 연유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요?”

 

원효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저께 처음 토굴에 들어 밤을 보낼 때는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더니, 어젯밤은 귀신굴에 의탁하여 근심이 많았소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소. 의상스님께서는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자비로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일대사(一大事)’의 인연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시지요? 그 내용은 바로 중생들의 지혜의 안목(眼目)을 열어 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놓으셨지요. 이렇듯 부처님의 불법은 늘 한 맛(一味)이며, 오로지 중생을 위한 마음뿐인 것을, 실제로 중생들이 그 법의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늘 한결같지만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소이다.” 의상은 늘 사형께서 중생을 생각하며 즐겨 인용하던 말씀이었지만, 다시 마음을 쓰면서 듣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 현상들인 법이 본래는 공(空)한 것이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병이 되고 놓아 버리면 그대로가 반야(般若)요 보리(菩提)이며 열반(涅槃)이 되는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둘은 본래 둘이 아니며, 다만 집착함으로써 둘로 갈라질 뿐인 데 말입니다. 그래서 삼승(三乘)이 곧 일불승(一佛乘)인 것이요, 무량승(無量乘)이 모두 일승(一乘)인 이치를 다시 한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원효는 이 이치를 이후 그 유명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총상이 된 제1문이자, 제4문인, 삼승일승화쟁론(三乘一乘和諍論)과 인법이집화쟁문(人法異執和諍門)을 통해, 곧 법이 스스로 사람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에 법을 붙잡고 집착함으로써, 그 스스로를 얽어매게 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변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의 방법으로써도 교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원효로 하여금 더욱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진정으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무한성을 깨달아, 무애행(無碍行)을 이어간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상은 사형의 이야기를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며칠간 사형의 고민이 무척 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뜻을 같이 하기로 한 의상의 입장에선 조금은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의상은 원효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마음에 어떤 결정을 하셨는지요?”

 

원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원효는 큰 뜻을 품고 실행에 옮길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짓고는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남아서, 이 모든 중생들이 궁극에는 모든 여래께 공경하고 공양하며, 생각하는 바 대로 모두 구호하게 되고, 모든 불법만을 오로지 구하게 되어, 모든 선근을 부지런히 쌓아 모으며, 모든 불법을 늘 한결같이 생각하며, 그래서 그들의 모든 서원을 만족하게 되고, 모든 보살의 행을 아름답게 성취하여, 모든 선지식을 진정으로 받들어 섬기게 되고, 일체 세계의 모든 여래가 계시는 데 나아가서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듣고 지녀서,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큰 지혜인 ‘구경(究竟)의 큰 일’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힘껏 돕고 싶습니다. 의상스님” 원효의 결심은 겉으론 하루아침의 일인 듯 보였지만, 실은 오랜 시간 내면에서 숙성되어 온 것이었다. 비록 마음은 이 세간에 구애받지는 않더라도(離世間), 결코 중생세간을 떠나지 않겠다(入世間)고 하는 적극적인 구도의 결심이 섰던 것이다.

 

그날 정오, 당항포 인근의 포구에서 상선 한 척이 드디어 돛을 올렸다. 의상은 마지막으로 육지를 돌아보며 먼발치에 서 있는 원효를 향해 합장했다. 모래사장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 한 승려의 모습이 아득하게 작아지고 있었다. 원효는 떠나는 배를 향해 깊이 허리를 굽혔다. 한 사람은 바다를 건너 장안과 종남산으로 향했고, 한 사람은 다시 서라벌로 돌아가 거리와 장터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법문을 펼칠 것이었다. 그 갈림길의 시작이, 바로 두 번째 당나라를 향해 당항포로 내려오던 이 여정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의상은 배 안에서 경전의 행간을 넘기다 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다시 굳은 다짐을 했다. ‘모든 법이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사형의 말씀처럼, 누구도 꿰뚫지 못한 그 실상의 참뜻을, 그곳이라면... 사상의 혼탁을 뚫고 근원을 명확히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의상의 가슴속에 다시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원효는 서라벌로 돌아오는 길에서 저 멀리 떠난 의상을 위해 큰 서원을 세우며 합장했다.

 

“중생계가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衆生界盡 我願乃盡), 세계가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고(世界盡 我願乃盡), 허공계가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虛空界盡 我願乃盡), 모든 법계가 다할 때에야 나의 이 원이 다할 것이고(諸法界盡 我願乃盡), 부처 세계가 다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佛世界盡 我願乃盡), 끝내 모든 부처의 수명이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諸佛壽命盡 我願乃盡), 모든 부처의 공덕이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諸佛功德盡 我願乃盡), 모든 부처의 신력이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이며(諸佛神力盡 我願乃盡), 모든 부처의 지혜가 다할 때에야 나의 원이 다할 것 이다(諸佛智慧盡 我願乃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