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1장 마음의 바람

qhrwk 2026. 4. 29. 07:47

 

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1장 마음의 바람

 

당(唐)나라, 장안(長安).

의상이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 도착한 지도 어느덧 달포가 흘렀다. 당나라에서는 화엄경에 대한 존경과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열정은 대단했다. 절간에서는 어느 강학 장소이든 간에 스님들 곁에는 늘 화엄경을 두고 있었고, 즐겁게 암송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였다. 의상은 아침예불을 마치고 간단히 주변을 정리한 후, 아침 공부를 시작하려는 순간, 지엄(智儼)스님께서 찾는다는 전갈을 받았다. 처음 도착하여 인사를 올린 후 이곳 지엄사에서는 여러 불사가 진행 중이고 바쁘신 와중에 찾아 뵙기도 죄송하고 하여 사실 지엄스님과의 만남을 미루어 왔다.

 

반갑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으니 지엄스님께서는 며칠전 운남성에 있는 제자가 보내준 차라고 하시며 같이 마셔보자고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한참을 주변 불사 이야기로 차담을 나누다가, 지엄스님께서는 처음 만나보는 의상의 절제된 태도에 감동하였다고 말씀하시며, 스스로 무게 중심을 잘 잡고(莊敬自持), 엄숙하게 언행을 간수한다(簡默自重)라고 칭찬을 하시고는 재미있는 비유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당나라의 도교에 전해 오는《도장전서(道藏全書)》《연단비결(鍊丹秘訣)》혹은《서청경(西升經)》이나《태상노군내단서(太上老君內丹書)》류에서 등장하는 연단술(鍊丹術)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중 연단술사가 신령스러운 단약(丹藥)을 쇠에 떨어뜨려서 평범한 금속들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는(點鐵成金) 대목들이 자주 나옵니다. 혹시 의상스님께서 들어 보셨는지요?” 의상은 당시 당나라에 성행하던 도교의 분위기는 이미 조금은 알고 있었으나, 그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스님 제가 앎이 얕아서 세세히 그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지엄스님은 겸연쩍은 듯 큰 소리로 웃으시면서 “하하하... 당연하죠. 제가 괜한 이야기를 물어본 것 같습니다. 말인즉슨 신선(仙人)이 쇠를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 비법을 다룬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 내용들이 훌륭하다기 보다는, 부처님 정법(正法)을 만난 중생들이 이와 같이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 비유를 말씀드린 겁니다.”

 

지엄스님은 조금 전과는 달리 자세를 바로 하시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화엄경 명법품(明法品)에 보면 정법(正法)을 수지하면 열가지 덕을 갖춘다고 말씀하셨어요...즉 바른 법이란 불교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만을 선택하라면 바로 정법일 것입니다. 만약 정법을 수지하면 한량없는 지혜를 성취하게 되고, 한량없는 교묘하고 능숙한 분별력을 성취하게 되고, 넓고 크고 바른 생각의 힘을 성취하게 되고, 제법의 실상을 분명하게 아는 총지를 성취하게 되고, 끝없는 보리심을 성취한게 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정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이고, 정법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요술방망이다... 라고 할 수 있어요... 하하하... 정법은 이와 같은 위신력이 있어서 정법구현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스님께 질문을 하나 드려 볼까 합니다. 정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순간 의상스님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하였다.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질문을 하신 지엄스님을 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제가 조금 더 생각을 해 본 후에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의상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지엄스님은 이어서 말씀을 하시면서 “정법이란 곧 깨달음의 마음이며 깨달은 마음이며 깨달음을 실현하는 마음입니다. 정법을 수지하여 부처님과 부처님의 대중들과 늘 함께하고 있다면, 지혜의 힘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지요...부처님의 정법을 수지하게 되면 삼세 모든 부처님들과 체성이 동일하게 되며, 일체 보살과 일체 중생과 일체 생명의 체성이 동일함을 알아서 청정한 마음을 성취하게 됩니다. 부디 의상스님께서도 정법을 수지하게 되면 이러한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니, 일체 여래의 지혜와 일체 보살의 큰 서원과 지혜를 성취하시고, 능히 큰 법사가 되어서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고 수호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엄스님은 얼굴 가득 자비로운 미소를 띠시고는 의상스님을 향해 공경 합장하셨다. 의상은 차담에서 지엄스님께서 축원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너무나도 감복하여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지엄스님께 삼배를 정성껏 올렸다.

 

지엄스님 거처에서 나오는 길에 의상은 대웅전에 다시 들러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래 전 강원에서 아침마다 외우던 글이 생각났다. ‘여래가 열반하신 지 삼천년이 가까운지라 목숨도 또한 따라 감하니 어찌 무슨 낙이 있으리오. 다만 부지런히 정진하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고, 항상 무상한 줄 생각하여 삼가 방일하지 말지어다.'  "그렇다! 세존께서도 열반에 들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곧 ‘어리석음을 여의고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已發一切智心 應離癡暗 精勤守護 無令放逸)’고 하셨다. 세속에서도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지런한 것 한 가지면 천하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부처님이 증득한 일체 지혜의 마음을 이미 내었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어리석음을 떠나는 일이다. 다음으로는 어리석음을 떠났다면 그것을 부지런히 정진하여 잘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증득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도 그 성공의 열쇠가 여기에 있다!” 부처님의 가피로 의상의 마음에는 감동의 큰 울림이 울렸다. 의상은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화엄경 한 구절을 외우며 부처님께 법공양을 올렸다.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구족하면 삼보(三寶)의 종성(種性)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므로,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紹隆佛種),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므로 법보(法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며, 교법(敎法)을 잘 받들어 어기지 아니하므로 승보(僧寶)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그리곤 굳은 다짐을 하였다. “기필코 중생이란 밭에 부처님 종자를 심으므로 부처님의 종성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어느덧 사시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의상은 일어나 부처님 전에 진실된 마음으로 삼배를 올렸다. 오랜 시간 바닥에서 이마를 때지 않았다. 오늘 지엄스님과의 법담으로 차갑고 단단하게만 느껴졌던 이국의 공기가 봄바람에 눈 녹듯이 스르르 녹아내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