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5장 함께 가는길(4)
눈이 부셔서 볼 수도 없으리만치 빛나는 금빛의 몸과 만면에 환한 자비의 미소를 머금으신 부처님께서 일체 보리수나무 아래와 수미산 정상을 떠나지 않으시고, 저 야마천궁의 보배로 화려하게 장엄한 궁전으로 향하셨다. 그때에 야마천왕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는 즉시 그 궁전 안에 보련화장(寶蓮華藏) 사자좌를 신통한 힘으로 변화하여 만들었고, 그위를 백만 층으로 장엄하고, 백만의 황금그물이 서로 얽히었고, 백만의 꽃 휘장, 백만의 꽃다발 휘장, 백만의 향 휘장, 백만의 보배 휘장이 그 위를 덮는 것이었다. 원효는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궁전은 서라벌에서 조차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명칭(名稱)여래께서 홀연히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는 모든 길상(吉祥)중에 가장 높으며 일찍이 이 마니궁전에 드셨으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하옵니다.” 원효는 그 이야기를 넋이 나간 듯 듣고 있었다. 저 멀리 구름 속 보왕(寶王)여래께서 순간 금가루를 뿌린 듯한 아름다운 자태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선 세간의 등불이시니 모든 길상 중에 가장 높으며 일찍이 이 청정궁전에 드셨으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합니다.” 원효의 얼굴도 함께 그 화려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곧이어 부처님께서 끝이 없는 긴 손가락으로 큰 광명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천상과 인간의 모든 생명들의 앞길이 그리고 원효의 이마가 갑자기 환히 트이어 걸림 없는 무지개빛으로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원효는 서라벌에서 본 강강술래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순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푸른 옷으로 차려입은 천신들이 다시 나타나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기 시작했다. “찬탄합시다. 찬탄합시다. 이 세상에 사람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중생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내 부처님이 오시고 당신 부처님이 오심을 찬탄합시다. 서로 서로 부처님임을 깨달아 목청껏 소리 높여 부처님을 찬탄합시다.” 원효는 순간 환희의 기쁨에 벅차오르는 감동에 그 천신들과 손을 맞잡고 게송을 함께 했다. “어...부처님...부처님....어...부처님....” 손을 허우적 거리다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너무나 아쉬웠다. 부처님의 환희로운 모습을 꿈속에서나마 처음 봬었다. 원효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갈증을 느꼈다. 손을 더듬어, 어둠 속에서 찬물을 가득 머금은 그릇을 찾았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른 새벽녘인 듯 토굴 안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앞뒤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봇짐을 뒤로하고 누워있는 의상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꿈에서 본 환희롭고 자비스러운 부처님들과 천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원효는 두 손을 모으고 혼잣말로 부처님을 불렀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
다행히 어렵사리 찾은 토굴의 입구는 바위에 가려져 있어, 내부는 어두컴컴했지만, 겨우 자리를 찾아 편히 쉴 수는 있었던 곳이었다. 시간이 잠시 흐른 듯, 의상 스님의 기척을 느꼈다. 원효도 다시 자리를 잡고 지친 몸을 벽에 기대었다. 새벽, 푸른빛이 동쪽 하늘을 물들일 즈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실타래와 같은 새벽 별빛이 토굴안으로 어렴풋이 비쳐오면서, 원효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기대어 자던 자리 주변에 인골이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낡은 무덤의 안쪽이었음을 보았다. 두 승려가 첫 밤을 어렵사리 보낸 그 토굴은 당시 백제의 석곽분인 대형 돌무지 무덤이었던 것이었다. 비바람에 허물어진 나머지 형체가 온전하지 않아 그들에게는 토굴로 잘못 인식 되었던 것이었다. 원효는 꿈에서 본 한없는 환희의 장면과 감동의 마음을 떠올리며,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달게 마셨던 그 감로수가, 인골 속에 고인 더러운 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구역질이 멈추어 지질 않았다. 한참 뒤에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그 후 원효의 마음속에선 적멸(寂滅)과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썩은 물은 여전히 거기 있었으나, 그것을 '썩었다'고 명명하던 내 안의 검열관이 이젠 사라진 것이다. 안팎의 모든 생각의 구분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몸도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밖은 세상을 삼켜 버릴 듯한 폭풍우가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날씨엔 배도 발이 묶여서, 거친 비가 그치기를 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폭풍우로 인해 떠나기로 약속한 날짜는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도 어쩔 수 없이 이 토굴을 의지처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날에는 그 토굴에서 편히 잘 수 있었지만, 일단 그 토굴이 무덤이었던 곳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원효는 어제 밤과는 달리 잠을 편히 이룰 수 가 없었다. 밤새 계속해서 해괴한 모습들을 한 귀신들이 꿈에 나타나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호소하는 꿈을 되풀이해서 꾸었다. 스스로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원효는 생각했다. ‘정작 더럽고 깨끗함을 가르는 이것은 무엇인가...' 그는 빈 인골을 들고 한참을 웃다가, 끝내 흘러내리는 회한의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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