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2장 마음의 바른길(1)
장안의 아침은 늘 그렇듯이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오늘은 율원에서 장안의 서명사(西明寺)에서 거처하시는 도선율사(道宣律師)께서 오셔서 계율에 관한 강론이 있는 날이었다. 도선율사는 태어날 적에 어머니가 해가 품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인도 승려가 나타나 “그대가 임신한 애는 바로 양조(梁朝)의 승우(僧祐)율사이다.”라고 알려주었다고 전한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경율론(經律論) 삼장을 모두 통달하고, 더욱 계율에 엄정하고 불법을 옹호하며 저술에 힘을 쓰고 율문에 정통하여, 천인(天人)들이 항상 모시고 호위하였다고 전한다. 그 예로 도선율사가 오대산에 가셨다가 중대(中臺)에 이르러 밤에 좌선하고 있는데, 어떤 동자가 곁에서 도선율사를 모시므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름은 현창(玄暢)이온데 천인(天人)이옵니다. 제석천왕의 명을 받잡고 오대산에서 수행하옵다가 스님이 여기 계시다 하므로 와서 모시나이다. 화엄경에 보면 청량산은 문수보살이 사는 곳이라 하였는데, 제각기 업보로 받은 눈이 오매, 보는 것은 역시 각자 다른 것입니다. 제가 보기로는 지금 머무시는 이 오대산은 벽유리 빛이고 다섯 봉우리의 등성이와 골짜기는 모두 보배로 되었사오며, 광명이 항상 찬란하여 밤낮이 다르지 아니하오나, 보살께서 계신 곳을 저도 알지 못하나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의상은 가사를 수하고 방문을 나서는데, 마침 법장(法藏)스님께서 거처로 마중을 나오셨다. “의상스님.. 그간 별첨 없으셨는지요” 의상은 무척 반가웠다. 처음 여기로 와서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었던 스님이었다. 그 때 법장스님이 전해 준 지엄스님의 꿈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의상이 처음 도착하기 전날 밤 지엄스님은 해동에서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라 그 가지가 여기 당나라까지 뻗어 덮고는, 봉황이 마니보주를 입에 물고 있고, 그 마니보주의 빛이 널리 세상에 비치는 꿈을 꾸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신 바로 그 스님이었다. 실로 선사의 예지몽이었다. “오늘 도선율사께서 강론을 위해 여기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기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의상은 공손히 연장자인 법장스님께 합장의 예를 올렸다. 두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성큼성큼 율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삼취정계 (三聚淨戒)와 화엄경의 십지품(十地品)의 이구지(離垢地) 그리고 명법품(明法品)의 깊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도선율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대강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우선, 섭율의계(攝律儀戒)는 악을 멈추는 계인데, 살생·음행 등을 금하는 것이고, 섭선법계(攝善法戒)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계이며, 섭중생계(攝衆生戒)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 즉, 자비행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계율은 대승불교의 화엄경, 범망경(梵網經), 성유식론(成唯識論)등에 근거한 것으로써, 대승, 소승, 출가인과 재가인에 관계없이 모두 다 이 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계, 십계 등을 받는 것을 별수(別受)라고 하는 데 대해 삼취정계를 받는 것은 총수(總受)라고 칭합니다. 이 계는 스승에게 받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불전(佛前)에 나아가서, 성유식론에 쓰여진 바 대로, ‘곧바로 마땅히 떠나야 할 법(所應離法)을 멀리 여의겠습니다.’ 라고 하고, 그리고 곧바로 ‘증(證)하여야 될 법을 닦아 증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곧바로 ‘일체 유정들을 널리 이익되게 하겠습니다.’ 라고 서원(誓願)하면 곧 계를 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당대 대율사의 율법에 관해 긴요하고도 일의관지(一意貫之)한 법문이 시작되었다.
의상은 밤마다 화엄경을 꾸준히 읽고 있었다. 그 방대한 불법의 세계는 그를 압도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서로를 비추고 있고, 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고, 전체 가운데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다시 하나가 되는 구조...그는 생각했다. ‘이 불법은 결코 흔들리는 마음 위에 세워질 수는 없다. 그래서 더더욱 이것을 지탱해줄 계율이 필요하다... 계율은 자유를 막는 벽이 아니라, 자유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둥이다.’ 의상은 헤어진 후 처음으로 원효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웃음.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던 그 표정. 의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당시 사형으로부터 깊이 듣고 감동하였던 계율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고 한다면, 오로지 자리행(自利行)만 있는 것이 되어 이승(二乘)에 머무를 뿐이오. 반면에 섭중생계만 있으면 이타행(利他行)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보리(菩提)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외다. 그리하여 삼취정계를 다 갖추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열매를 감득할 수 있고, 이 삼취정계야말로 불사약인 감로(甘露)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삼취정계 가운데 섭율의계는 단(斷)의 덕목(德目)이고, 섭선법계는 지(智)의 덕목이며, 섭중생계는 은(恩)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의 과(果)를 얻으면 그것이 곧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또한, 이 삼취정계를 간직함에 따라 중생과 자기의 내심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 · 여래장(如來藏) · 본각(本覺) · 불과(佛果)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오.’
어느 덧 도선율사의 법문은 화엄경 설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화엄경 십지품( 十地品 ) 이구지(離垢地)에 보면,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자 다 같이 합장하십시요.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초지(初地)를 수행하고 제이지(第二地)에 들어가려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의 깊은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정직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참을성 있는 마음과 조복하는 마음과 고요한 마음과 순일하게 선(善)한 마음과 잡란하지 않은 마음과 그리움이 없는 마음과 넓은 마음과 큰 마음이니라. 보살이 이 열 가지의 마음으로 이구지(離垢地)에 들어가느니라.” 도선율사의 엄숙한 화엄경 법문에 좌중의 분위기는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으로 가득찼다.
“보살이 이구지에 머물면 성품이 저절로 일체 살생을 멀리 여의어서 칼이나 몽둥이를 두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아니하고, 부끄럽고 수줍음이 있으며, 인자하고 용서함이 구족하며, 일체 중생으로 생명 있는 자에게는 항상 이익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오히려 나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하물며 그에게 중생이란 생각을 내면서 짐짓 거친 마음으로 살해를 행하겠는가.” 도선율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부처님의 말씀처럼, 이와 같이 사람 사람들의 진여불성은 본래로 살생을 멀리하며, 법성생명은 본래로 훔치는 일을 멀리하며, 참마음은 본래로 사음을 멀리하며, 차별 없는 참사람은 본래로 망어와 양설과 악구와 기어를 멀리합니다. 또 사람 사람들의 본래 부처인 경지와 본래 보살인 경지에서는 탐욕을 멀리하며, 분노를 멀리하며, 삿된 견해를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거짓 나에게서 번뇌의 때를 멀리 떠나려 하지 말고 본래로 청정한 진여자성의 참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으로 번뇌의 때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본래로 때가 없는 진여자성을 깨달아 누리는 것이, 번뇌의 때를 떠난 경지가, 바로 이구지(離垢地)인 것을 결정코 아셔야 합니다.”
도선율사의 자비로운 오전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불교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2장 마음의 바른길(3) (0) | 2026.04.29 |
|---|---|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2장 마음의 바른길(2) (0) | 2026.04.29 |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1장 마음의 바람 (0) | 2026.04.29 |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6장 물속의 별을 보다 (제1권 終) (0) | 2026.04.29 |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5장 함께 가는길(4) (0)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