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2장 마음의 바른길(3)

qhrwk 2026. 4. 29. 07:52

 

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2장 마음의 바른길(3)

 

순간 청중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신 도선율사께서 웃으시면서 “신라에서 불법을 깊이 배우기 위해 이곳까지 오신 훌륭한 스님이 한 분 계시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의상은 먼저 일어나 예의를 다해 공경 합장을 올렸다. “오 스님이시군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혹시 제가 방금 드린 질문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의상은 화엄경 명법품(明法品)의 내용 중 율사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답을 이어갔다.

“예, 스님, 답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방일하지 않아 온갖 수승한 수행을 성취하므로, 반드시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는 법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정진하여 물러가지 않음이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음이요, 모든 이양(利養)을 희구(希求)하지 않음이요, 일체 법이 허공과 같음을 앎이요, 잘 관찰하여 법계에 두루 들어감이며, 모든 법인(法印)을 알아 마음에 집착함이 없음이요, 항상 큰 서원을 발함이요, 청정한 법인(法忍)인 지혜의 광명을 성취함이요, 스스로의 선한 법을 관찰하여 증감하는 마음이 없음이요, 지음이 없는 문을 의지하여 모든 청정한 행을 닦음입니다. 이것을 말하여 열 가지 법에 머물러 일체 부처님으로 하여금 환희케 함이다 라고 합니다.” 의상은 정확하게 화엄경에 있는 내용을 답했다.

 

“그렇습니다. 보살의 삶은 원력의 삶입니다. 원력이 없는 삶은 꿈이 없는 삶이며,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삶의 의미가 다 사라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정한 법인(法忍)인 지혜의 광명을 인(忍)자를 사용하는 것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아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무리 큰 고통을 앓고 있더라도 참음으로서 눈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고통은 분명하게 있다는 뜻에서 사용하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는 방법이 이 열 가지 뿐인가요?” 도선율사께서 재차 의상에게 물으셨다. 모든 청중들이 가슴을 조리며 의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 다시 말씀 올리겠습니다. 또 열 가지가 있는데, 곧 불방일(不放逸)에 편안히 머물고, 무생법인(無生法忍)에 편안히 머물고, 대자(大慈)에 편안히 머물고, 대비(大悲)에 편안히 머물고, 만족한 바라밀다에 편안히 머물고, 큰 서원에 편안히 머물고, 공교한 방편에 편안히 머물고, 용맹한 힘에 편안히 머물고, 지혜에 평안히 머물러서, 일체 법이 모두 머문 바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음을 관찰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상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그 내용을 빠짐없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함으로 부처님이 환희하는 법 가운데 스스로의 선한 법을 잘 관찰하는 것과 수행을 하되 지음이 없는 문을 의지하여 모든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리도 바르고 정확하게 아시는 스님께서는 부디 불법 공부에 더욱 끊임없이 정진하셔서, 불법을 위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도선율사께서는 의상이 답한 내용에 대해 흡족하신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웃으셨다.

 

불법 공부를 깊이 한 보살과도 같이, 의상은 점점 그 견해가 우주적 관점을 가지게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기점으로 무한히 작은 세포의 세계로 깊이 또 깊이 알게 되어갔고, 다시 눈을 돌려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와, 또 은하계의 별들과 같이 많고 많은 또 다른 은하계로 관찰해나가며,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점점 더 멀리까지 관찰하게 되어, 그래서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광년의 거리로 펼쳐진 온 법계와 화장장엄세계까지 관찰하여 널리 들어가게 되어갔다.

 

“자 오늘 법문을 마치면서, 여러 대중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도선율사는 청중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듯,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살피듯 돌아보시고 난 후 말씀을 이어갔다.

“보통 사람의 사량분별심으로써가 아닌 지혜로써, 모든 법의 앞과 뒤를 잘 관찰하여서, 일체 사실들을 잘 분별하여 요달(了達)할 것이며, 열반경에서 가르치신 부처님의 유언과 같이,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 요의경(了義經)인 대승 경전에 의지하여 수행을 더욱 깊이 정진할 것이며, 사람들의 근기와 수준과 그가 좋아함을 잘 알아서, 부처님의 법에 함께 들어가도록 섭수(攝受)하여서, 다 같이 공성(空性)의 평등한 본체를 잘 깨달아서, 대승보살행으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수행을 해 나아가시길 마음속 깊이 바라는 바입니다.” 도선율사의 엄중한 당부 말씀과 수승한 법문을 들은 대중들은 모두 감사의 마음과 감동으로 그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도선율사는 법단을 내려오시며, 시자스님께 “요즘 방장스님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요?” 시자스님은 당황하며 말을 흐렸다. “요즘 몸이 좀 편찮으셔서...”

“허허... 불신(佛身)이 아픈 적이 있던가?” 한마디 선문답을 툭 던지시고는 이내 절문밖으로 바삐 향하셨다. 유마경(維摩經)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즉, 부처님께서 편찮으셔서 우유를 구하러 나온 아난에게 질책을 하며 유마거사가 던진 말이었다.

천인(天人) 현창(玄暢)이 말한 바와 같이, 진정 도선율사께서 계시는 곳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강론이 끝이 나고 법장스님은 의상스님과 율원의 강당을 걸어 나오면서 의상스님의 의연한 모습에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 혼자 생각을 했다. ‘의상스님은 참으로 저 어려운 화엄경을 깊이 믿고(信), 이해하고(解), 실제로 행동으로 잘 나타내 보이며(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증명해 내고(證)있도다! 어쩌면 저리도 쉽게 간략한 말로 정리하여 답을 할 수 있을까? 부러울 뿐이로다. 스승님께서 칭찬하신 바 그대로이다.’ 법장스님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의상의 단정한 걸음걸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의상은 주위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신뢰받는 수행자가 되어갔다. 그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맡겨졌고,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