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4장 복회(福會) (1)

qhrwk 2026. 5. 1. 08:40

 

제4장 복회(福會) (1) 

 

멀찌감치 황룡사의 구층 목탑 위로 푸른 달이 걸려 오르는 것이 뚜렷이 보이고, 이곳 흥륜사(興輪寺)에서는 모처럼 서라벌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남녀 구분 없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음력 2월 8일에서 15일까지 8일간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탄생, 출가, 열반)와 연계하여, 신라에서는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개인의 복을 비는 복회(福會)라는 불교 행사가 있었다.

영험 있는 가장 오래된 가람에서 불상을 모시고 대법회를 포함하여, 모든 전각과 탑을 두루 돌며 부처님을 기리는 행사였다.

 

지난해에 비해 각자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져서인지 탑돌이에 참여하여 복을 빌려는 서라벌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였다. 첫날 행사로 분축(焚祝)을 하며 축문(복을 기원하는 글)을 불에 태워 기원을 전달하는 절차가 범례에 따라 먼저 시작이 되었다. 축문을 소지(불에 태우는 행위)하며, 연기와 그을음이 신령에게 올라가 기원을 전한다는 원리에서 엄숙히 진행이 되었다.

 

이어서 모두가 참여하는 장엄한 탑돌이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예경의례가 거행되었고, 이어서 십바라밀 정진 과정의 수행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방편–원–력–지’ 순서로 전각과 탑을 돌기 시작했다. 탑돌이는 원·반원형, 반달형, 절구형 등 다양한 형태의 모양으로 진행이 되었다. 연이어 웅장한 법고와 범종의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멎자, 향과 등불을 든 많은 사람들이 탑을 중심으로 일렬로 서서, 천천히 움직이며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탑을 돌며 염불하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자, 장엄한 기운이 그 주위를 감쌌다.

 

흥륜사는 신라 법흥왕 시기(527년경) 고구려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로, 이차돈 순교 후 진흥왕 시기(544년)에 완성된 당시 서라벌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찰이었다.

흥륜사 남문인 길달문(吉達門)을 통과한 행렬의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전각과 층탑 주위로 스님들과 신도들이 각자 다양한 냄새의 향과 모양과 색깔의 등을 들고 발걸음을 천천히 맞추고 있었다.

 

등불 행렬의 중간에는 여섯 사람이 나란히 발을 맞추며 걷고 있었다. 은은한 염송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승인 원진(圓眞), 중견의 강사 스님 혜명(慧明), 젊은 비구니 스님 법연(法緣), 여성 불자 여정화(如靜華), 유학자 출신 재가자 중익(重翼), 그리고 고구려계 상인 출신 불자 각화(覺華)였다. 이들은 평소에도 서로 만나 법담을 자주 나누며 지내던 사이였다.

 

제일 먼저 혜명 스님이 중간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바의 길을 걷는 중생들은 업력에 이끌려 헤매고 있지만, 오늘 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탑을 돌며, 한 걸음 한 걸음 선한 인(因)을 짓고 있어요, 우리의 내딛는 걸음마다 선한 과(果)가 반드시 지어질 것이 아닐까요?” 노승이신 원진 스님께서 “그렇지, 탑은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고, 우리가 그 둘레를 도는 것은 우주의 생성원리와 운영되는 이치인 법계의 연기를 몸으로 그리며 마음에 새기는 것이지. 돌고 도는 이 흐름 속에서 생과 사,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님을 눈치 챌 이도 있겠지...”

 

이윽고 조그만한 둥근 주황색 등을 들고 탑돌이를 하던 법연 스님이 “스승님, 탑돌이는 과거에 지은 업장을 참회하는 의식인가요, 아니면 미래의 선한 과보를 짓기 위한 의식인가요?” 노승 원진 스님께서 웃으며 답을 하셨다. “화엄경에 열 가지 보현행원에도 네 번째 참회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 놓으셨네. 그 마음이 바로 선업이요, 선업을 짓는 마음이 이미 참회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앞과 뒤의 개인사, 인생의 과거와 미래를 나누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다만, 미혹한 마음에서의 환영일 뿐인 것이야. 법도 집착하면 병이 되는 것이라, 공(空)에 집착하면 공병(空病)이 되고, 유식에 집착하면 유식병이 되고, 계율에 집착하면 계율병이 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