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제3장 거울의 빛

qhrwk 2026. 4. 29. 08:15

 

제2권 《계율과 마음 사이》 - 제3장 거울의 빛

 

보이는 모든 것이 폭포수처럼 강렬하게 가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가, 거센 바다의 조류처럼 엉키며 흩어져 되돌아가며 방향성 없이 몸부림치다가, 순간 아득한 평온을 되찾아 다시 그 자리에서 홀연(忽然)히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세상은 하나의 숨결 속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새끼가 꼬여가듯, 어디에선가 다가온, 알 수 없는 인연의 실 가닥이 미세하고 촘촘히 엮여져 가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땅은 그 발자취를 힘껏 받쳐 올리며, 연꽃으로 소리 없이 피어나고, 그 꽃잎마다에는 새로운 우주의 궁전이 황홀(恍惚)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 속에는 웃음의 메아리가 있었다. 그것은 먼 옛날의 자신,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이 스스로 웃는 소리였다. 문득 그는 깨달았다. 보이는 세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의 그물코마다 그 움직임이 미세하게 흔들리면, 십만 세계가 따라 일어나고, 새로이 태어난 존재들이 벅찬 숨을 몰아내 쉰다. 그가 마지막으로 호흡을 내쉬자, 숨결이 허공으로 다시 흩어졌다. 그 흩어진 기운은 푸른 빛의 별이 되어 밤하늘을 메웠다. 그 별마다 한 생각이 깃들고, 그 생각마다 또 다른 알지 못하는 존재가 다시 피어났다. 그 모든 별빛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눈부신 환광(幻光)처럼 그의 내면을 가득 빈틈없이 채웠다.

 

원효는 말했다. “모든 꿈은 마음의 문에 이르는 길이었네. 깨어남 또한 꿈의 또 다른 이름이로다.” 그 말끝에, 빛과 어둠이 다시 하나의 숨구멍 안으로 섞여 들었다. 그 순간, 그는 ‘무애(無礙)’의 바람이 되어,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으면서도, 곧 모든 곳을 스치며 사라졌다.

 

공간은 아직 태동하지 않았다. 빛도 어둠도, 이름 붙일 수 있는 형상은 없었다. 시간의 맥박에 놀아나던 늙음과 젊음, 생과 멸의 경계도 사라진 자리. 다만, 미세한 숨결 - 세계의 근원에서 울리는 맥동만이 있었다. 그 진동의 결 위에서 원효와 의상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미소 속에 고요를 감추었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 그 고요의 향기를 숨결로 들이마셨다.

 

“오랜만이오, 의상이여.” 원효의 음성은 파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향(香)의 번짐과도 같았다. 그것은 허공의 결을 따라 흘러가며, 닿기도 전에 스스로 소멸해 버리는 무상(無相)의 울림이었다. 의상이 그 여운 속에서 조용히 응했다.

“사형은 늘, 나의 마음결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나 봅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한 먼지와 같은 공간이 아니라, 무애 법계 그 자체였다.

“사형이 본 세상은 어땠습니까. 그 무애의 길 위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원효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그 허공은 위도 아래도 없는 자리,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자리, 없으면서도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나는 그림자. “끝이라 믿은 곳마다 또 다른 시작이 서 있었네. 나는 떠돌며 깨달았지. 부처란 길의 종착점 밖에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길 위의 모든 존재 자체가 이미 부처의 무한한 몸임을 알게 되었네.”

 

의상이 가만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세계가 다시 피어났다. 손끝을 들어 뻗자, 찰나의 빛이 그물처럼 엉켜 퍼졌다. 그 빛은 한 점의 티끌 속에서도 만법을 비추었고, 그물의 모든 눈마다 우주가 머물렀다. 두 사람은 말을 멈추었다.

그 빛의 그물은 안과 밖, 유(有)와 공(空)을 가르지 않았다. 한 줄기의 빛이 곧 삼천대천세계였고, 그 세계의 모든 빛이 다시 한 줄기로 되돌아왔다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그물의 눈마다 부처가 있었고, 그 부처마다 온 세계가 머물렀다.

 

의상의 손끝, 원효의 숨, 허공 세계의 떨림이 모두 중도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이름 붙일 수도, 전혀 분리할 수도 없는 그것 -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

 

시작은 없었다.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비추고 있을 뿐, 나누어져 있질 않았다. 생이 미명(微明)처럼 흐르고, 멸(滅) 또한 그 흐름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다만 숨소리 하나, 우주가 ‘스스로를 숨쉬는’ 고요 속의 맥박이 있었다. 그 맥박 위에서 원효와 의상이 마주 앉아 있었다. 점도 선도 아니었던 빛의 망이 있었다. 그 안에는 서로를 비추는 무수한 구슬들이 놓여 있었다. 하나가 미세하게 떨리면, 그 울림이 곧 모든 구슬 속에서 반향(反響)하였다. 부분은 전체를 드러내고, 전체는 한 점으로 스스로를 비추었다.

 

의상이 말했다.

“이것이 제가 본 법계(法界)입니다, 사형.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구슬이라면, 그 구슬마다 무량세계가 비춰지고, 그 세계들이 다시 서로를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안에 머물면서도 서로를 나누지 않는 자리이지요.”

원효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 빛의 그물에 닿았다. 손끝이 스치는 순간, 그물 전체가 떨렸다.

의상이 가만히 속삭였다. “법계가 숨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원효가 고요히 웃었다. “멈춘 법은 이미 생명을 잃은 법이지요. 법계는 고요 속에서도 늘 흐르고 있고, 그 흐름은 고요함과 작용이 둘이 아닌 ‘지혜의 업’으로써 자유자재한 무애의 무공용(無功用)의 공용(功用)인 것이오.”

 

 

구슬마다 끊임없이 알 수 없고, 지금껏 본 적도 없는 새로운 빛이 피어났고, 그 빛들이 서로 서로 겹치며 연신 큰 연꽃의 모습이 쉴새 없이 그 자취를 나타내었다.

의상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의 무애가 곧 법계의 자비로운 숨결이었군요.”

원효가 미소 지었다. “그대의 화엄은 그 자비로운 숨결을 머무르게 하는 몸이 되었소. 이제 말은 빛이 되었고, 빛은 다시 공으로 돌아가 모든 구슬 속에서 스스로를 비추는구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차별의 빛은 자비로움으로 서로의 가슴을 품어 안았다.

 

청명한 푸른 빛이 원효의 가슴에서 흘러 의상의 가슴으로 스며들었고, 영롱한 금빛이 의상의 눈에서 피어나 원효의 머리 위로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두 빛이 섞이며 심연((深淵)과 하늘(空)이 하나 된, 일심(一心)과 경계 없는 완전한 법계(法界)가, 시작과 끝도 없는 원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부처란 이름이 붙을 자리는 없다. 다만 모든 길 위에서 모든 존재가 서로를 맑고 밝게 비추는 그 한 자리가 곧 부처이니라.” 그 순간, 세계는 한 번 깊이 숨을 쉬며 스스로의 빛을 깨달았다.

 

원효가 고요히 웃었다.

“그대의 거울 속에서 다시 법을 보게 되었소.” 그 순간, 의상의 눈가에 금빛이 번졌다.

그물의 구슬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아이와 노인, 죄인과 수행자, 사랑하는 이와 미워하는 이 - 모두가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색이 사라지고, 투명한 빛 하나가 세상을 감쌌다. 그 빛은 빛이 아니었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한마음이었다.

그 한마음이 우주를 감돌았다. 그리고 한 번, 깊고 고요한 숨결이 일었다.

세계는 그 숨결 속에서 천천히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새벽녘, 원효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눈을 떴다. 온 몸은 땀에 젖어 있었고, 가슴 한가운데에는 아직도 미세한 진동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누운 채 숨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꿈이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또렷했고, 현실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완전했다는 것을. 원효는 천천히 일어났다. 방문을 여니, 아직 잠에서 덜 깬 세상이 그를 맞이했다. 지난밤 쉬이 잠이 오질 않아서, 사경 해 놓았던 종이 위의 몇몇 글자들이 보였다. 한자씩 다시 읽어 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사람(一切無礙人)은 도(道)를 통해 일거에 생사(生死)의 굴레에서 벗어나며(一道出生事), 법계와 중생계, 둘이 아닌 전체가(法界衆生界) 궁극에 이르러서는 차별이 전연 없으며(究竟無差別), 모든 중생의 마음(一切衆生心)이 공평무사하게 과거·현재·미래 삼세(三世)에 두루 머무르며(普在三世中), 여래(如來)가 이 한마음에 계심을(如來於一心) 빠짐없이 통달한다(一切悉通達)...”

 

원효는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의 극결로, 구경에는 생로병사에서 초탈하게 된, 그리고 우주 만법이 원융무애(圓融無礙)한 경계에 도달하여, 모든 현상 간 구분이 완전히 소멸한 평등한 법계의 이치를 터득하여, 그 모든 것이 한마음에 원융되어 있고 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 화엄의 '일심(一心)'을 깨달은 무애인의 궁극적 지성(智性)과 무애인의 명석(明晳)한 깨달음을 꿈에서 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