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장 복회(福會) (4)
“인연(因緣)으로 생(生)한다는 것은 일체 세제(世諦)의 법을 들어서 말한 것인데, 이 세제의 뜻이 멸(滅)이라는 것은 진여가 되도록 세속을 녹였기 때문입니다. 인연으로 소생한다고 말하는 뜻은 인연소생이 본질적으로 적멸(寂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연소생을 비생(非生)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생의(生義)가 적멸로부터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의가 곧 비생이므로 그 생의를 구함은 곧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까닭으로 생의가 곧 적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효의 법문은 더욱 깊어 지고 있었고, 귀를 쫑긋하게 해서, 반드시 이해해 보려고 이마엔 인상을 써가며, 눈을 부릅뜨고 집중해서 듣는 청중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모든 생멸을 멸한다는 것은 진제(眞際) 적멸(寂滅)의 법을 들어서 말한 것인데, 이 진제의 뜻이 생이라는 것은 세속이 되도록 진여를 녹였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적멸법이 인연을 쫓아서 생기(生起)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적멸을 비멸(非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적멸이 생의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며, 그 적멸이 비적멸(非寂滅)이므로 적멸의 뜻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까닭으로 적멸이 인연을 쫓아 생(生)한다고 말하는데, 적멸(寂滅)이 생이라는 것은 불생(不生)의 생(生)이요, 생의(生義)가 멸(滅)이라는 것은 불멸(不滅)의 멸(滅)인 연유이오이다... 불멸의 멸이므로 멸이 곧 생이 되고, 불생의 생이므로 생이 곧 적멸이 되어서, 합해서 말한다면, 생이 곧 적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적멸을 지키지 않고 적멸이 곧 생이 되면서 생에 머무르지는 않는 것이오. 바로 생멸(生滅)이 불이(不二)하고, 동적(動寂)이 무별(無別)하므로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일심(一心)의 법이라 말하는 것이오.”
원효의 이 법문은 《금강삼매경론》의 두 번째 장(品)인 무상법품(無相法品)에 나오는 대목으로 원효의 일심(一心)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다룬 법문이다.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보살들에게 생멸(生滅)을 초월한 마음의 본성에 대해 설하신다. 곧 마음은 본래 근본이 없고 공적(空寂)하며, 생김이 없어 주체나 대상이 없는 무상법(無相法)의 경지라고 말씀하신 내용이다. 즉, 인연소생(因緣所生)을 비생(非生)·적멸(寂滅)로 해석하며, 생멸불이(生滅不二: 一心)를 강조한 것이다. 경(經)의 게송 중에 ‘인연으로 생긴 바’라고 하는 이 뜻은 바로 멸이요 생이 아니며, 모든 ‘생멸을 멸한다’는 이 뜻은 바로 생이요 멸이 아니다(因緣所生義 是義滅非生 滅諸生滅義 是義生非滅)’라는 것에 대한 원효의 논(論: 설명)이다. 여기서 원효는 세제(世諦)와 진제(眞際), 그리고 인연소생(因緣所生)과 적멸(寂滅)의 불이(不二)를 일심(一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여기서 원효는 연기(緣起)와 적멸(寂滅)의 지혜를 통해 반야(般若)를 증득하는 과정을 요약했는데, 원효의 법문에서 자주 등장했던 핵심 가르침이었으며, 비사색계(非想非非想處)의 법인(法印)을 관찰하는 수행을 특히 강조하셨다. 비사색계는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순서로, 가장 높은 무색계의 마지막 선정으로 설명이 된다. 이 단계는 거친 생각이 없지만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미세한 상태로, 생각이 떠난 것이 아니라(非想),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非非想) 경지를 말한다.
원효는 이어서 법문하기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불신(佛身)의 영원(永遠)과 무상(無常)이 분리되지만, 평등하고 원만한 깨달음에서는 영원과 무상을 따로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즉 인연 따라 생멸하는 육신(色身)과 영원한 법신(法身)이 미개(未開) 상태에서는 그렇게 분리되어 보이지만, 평등원만(平等圓滿)한 깨달음에서는 불이(不二)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법문은 후에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제9문 「불신이의화쟁문(佛身異義和諍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가 된다. 결국은 원효는 다른 여러 불법 쟁론을 이 심도 있는 화쟁론(和諍論)의 ‘일미(一味)’로써 수렴하고 통합하게 된다.
“또 화엄경 십회향품(十廻向品) 중 '제일구호일체중생이중생회향(第一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대목에 보면, 자신의 신체 중에 눈, 귀, 코 등을 중생들에게 보시하면서, ‘이불견신(以不堅身)으로 역견고신(易堅固身)이라, 즉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견고한 몸을 바꾸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록 이 육체는 늙고 병들어 사라질 '견고하지 못한 것(不堅身)'이지만, 이 몸을 바쳐 중생을 구제하고 법을 닦음으로써,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진리의 몸인 견고한 몸(堅固身), 즉 법신(法身)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 부처님의 말씀이니 꼭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큰 복이 될 것이오...하하하”
“오늘 법문의 마지막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화엄경의 부처님 말씀 중에서 무엇이 청정한 계율인가에 대한 것과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지혜로운 회향에 대해 자세히 법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효는 어깨를 좌우로 힘껏 펴면서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자비로운 따듯한 가슴속에 다 품을 듯한 모습으로 법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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