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8권 《한마음》 - 제3장 판비량(判比量)

qhrwk 2026. 5. 17. 06:57



제3장 판비량(判比量)

 

“당나라 현장(玄壯)스님께서 인도 유학 중에 고

안했다고 하는 만법유식(萬法唯識)을 증명하는 논증식인 유식비량(唯識比量)과 대승불설(大乘佛說)을 증명하는 논증식에 대해 여쭈어 볼 수 있을 런지요? 그리고 부처가 갖춘 네 가지 지혜에 관한 논리적 추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오진(悟眞) 스님의 질문이었다. 당시 가야산의 산신이 법력에 감화되어 그를 수호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스님이었다.

 

“유식비량(唯識比量)이라 함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만법의 구성요소(法)들은 모두 마음이 변화한 것’이라는 대승 유식의 교리를 증명하는 삼단 논법적 추론식으로서, ‘그 구성 요소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간주하는 논리인데, 이는 소승불교도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안된 논리적 추론인 것입니다. 현장(玄壯) 스님이 인도 나란다 대학에서 유학 시절 무차대회(無遮大會)에서 이를 공표하였고, 이후 불교 인식논리학인 인명학(因明學)에서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대표되며, 종(宗, 주장)–인(因, 이유)–유(喩, 유례)로 구성된 논리 추론식입니다.

 

이는 해탈에 이르는 지식의 수단을 말합니다. 현량(現量), 비량(非量), 성교량(成交量), 비유량(非喩量)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중에 현량(現量)은 오관(五官)이 대상과 직접 접촉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개념화되지는 않은 지식 즉 감각적 직관지(直觀知)에 가까운 개념이고, 비량(比量)은 현량(現量)을 기초로 하여 비교와 추리를 더한 것인데, 즉 논리적 추론(논증)에 의해 얻어진 지식을 말합니다. 이 논증식을 예를 들면,

 

종(宗): 저 산에 불이 있다.

인(因): (저 산에) 연기가 있기 때문에.

유(喩): 마치 아궁이와 같이. (연기가 있는 곳엔 불이 있다)와 같이,

 

종(宗)은 상대방의 반대와 무관하게 주장(주사)을 세우는 부분으로, 논증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인(因)은 주장을 승인하게 하는 근거·이유로, 종과 직접 연결되며 진정한 논증과 모순적 주장으로 구분됩니다. 유(喩)는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체적 실례(유례)를 드는 부분으로, 동유(同喩)·이유(異喩)로 나뉘어 설명됩니다.

 

현장(玄奘) 스님의 주요 논증은 바로

 

종(宗): 승의(勝義)에 의거할 때, 양측 모두 인정하는 색(色)은 안식(眼識)을 벗어나 있지 않다.

인(因): 우리 측에서 인정하는 초삼(18계 중 첫 3개, 즉 안근(眼根), 색경(色境), 안식(眼識))에

           포함되면서 안근(안계)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유(喩): 마치 안식과 같이. 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승의제(勝義諦)와 세속제(世俗諦)가 있는데, 세속제는 일반적인 세속 사람들의 상식에 의거한 가르침이며, 승의제는 세간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한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그런 승의적 가르침에 의거할 경우, 대승과 소승 양측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시각 대상[色]들은 시각인식(眼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즉, 대승(大乘) 유식(唯識)에서 말하듯이 안식이 변화하여 시각 대상처럼 착각되어 나타난 것일 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宗), 주장: 왜냐하면, 대승 측에서 말하는 십팔계 가운데 처음 세 가지인 안근(안계), 색경

                   (색계), 안식(안식계)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안근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因), 이유: 이런 사실은 안식을 벗어난 것이 아닌 안식이, 십팔계 가운데 처음 세 가지인

                    안근, 색경, 안식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안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실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기발한 궤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증식에서 현장(玄奘)은 색경(色境), 즉 소승 측에서 외계에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형상(色)이 안식(眼識)을 벗어난 것이 아님을 논증하려 했습니다.”

 

현장(玄奘)은 이런 식으로 1량(量)~6량(量)까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모두에 대한 비량(比量)을 고안함으로써, 색, 성, 향, 미, 촉, 법 모두가 각각의 식(識)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으로 만법유식을 입증하는 논리임을 주장했었다. 결국 1량~6량의 논증 구조는 모두 동일하므로, 1량에 대해서만 올바름이 증명된다면 만법유식이 증명되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발하고도 야심 찬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원효 스님의 저술인 판비량론(判比量論)에서 보면 사형께서는 ‘상위결정의 논증식’을 고안하여 현장의 유식비량(唯識比量)을 상위결정의 부정인(不定因)이라는 오류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그것의 타당성을 반박하는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이때 ‘상위결정의 부정인’이란 무엇인지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면, 원효 스님은 다음과 같은 논증식으로 현장의 유식비량을 반론하였습니다. 즉

 

종(宗): 승의(勝義)에 의거할 때, 양측 모두 인정하는 색은 ‘반드시 안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因): 우리 측에서 인정하는 초삼(안근, 색경, 안식)에 포함되면서 안식에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유(喩): 마치 안근과 같이. 라고 논증하여 안근(眼根)과 안식(眼識)의 대칭성을 이용하여 절묘

           하게 반론을 제기하셨습니다.”

 

대승의 견지에 따르면 안근은 안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므로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현장의 논리와 원효의 논리는 완전히 대칭적인 것이 되므로, 더 이상 원효의 ‘상위결정의 논증식’을 비판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셨던 부처가 갖춘 네 가지 지혜는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곧 믿음의 대상입니다. 원효 스님께서 저술하신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저술해 놓으셨는데, 곧 정토(淨土)·예토(穢土)는 본래 일심(一心)이며, 마음의 원융(圓融)·회통(回通)이 깨끗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고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 여러가지 공덕을 닦아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지만, 불지(佛智)인 불사의지(不思議智)와 불가칭지(不可稱智)와 대승광지(大乘廣智)와 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지혜에 대해서는 의심하여 믿지 않지만, 죄와 복은 믿어서 선행을 닦아 그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이런 중생들은 그 나라의 궁전에 태어나 나이가 오백살이 되도록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경전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듣지 못하며, 보살이나 성문과 같은 성중도 만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네가지 지혜를 각각 소위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차례대로 배대 시킨다는 점과 본디 추론적 사유는 상단(常斷), 유무(有無), 일이(一異), 등의 이변적(二邊的) 사고, 또는 유(有), 무(無),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등의 사구적(四句的) 사유에 기초하는데, 하지만 이러한 불지(佛智)는 추론적 사유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믿어야 한다’고 원효 스님께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예를 들면, 만일 여래와 중생 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으며,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여 무상의 보리를 얻게 하는 것이라면 중생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모두가 부처가 되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제일 마지막에 부처가 될 중생은 이타(利他)의 공덕을 쌓을 수가 없게 됩니다. 교화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성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타의 공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화도 하지 않고 공덕이 쌓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공덕이 없이 부처가 된다는 일도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불(諸佛)은 그 시작이 없고, 비록 부처가 되는 일에 시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범부 중생이 아니었던 부처는 단 하나도 없고, 비록 부처가 다 원래 범부 중생이었지만 부처가 되는 일에는 시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생계가 끝남이 없다는 점은 이에 준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제불은 그 끝남이 없습니다. 비록 부처가 되는 일이 끝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부처가 되지 못할 범부는 단 하나도 없고, 비록 모두 나중에 부처가 되지만, 부처가 되는 일에 끝남이 없다. 그러므로 평등성지(平等性智)에서 제도하지 못할 중생이 없지만, 중생제도에 끝이 있는 것도 아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닦지도 않고 대원경지(大圓鏡智)가 갑자기 열린다면, 모든 범부에게도 그런 지혜가 열려야 하겠지만, 닦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닦아가면서 대원경지가 점차적으로 열린다면 이 역시 옳지 않는 말입니다. 무한한 경계가 다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 가지 난제를 대치하기 위해 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를 안립(安立)하여 이런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성소작지(成所作智)와 묘관찰지(妙觀察智)와 평등성지(平等性智)라는 세 가지 지혜를 초월하여 견줄 바 없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곧 이제(二諦)의 밖에 무이(無二)의 상태로 홀로 존재하기 때문에 분별의 현상세계에 관여는 하지만 아득하여 관여함이 없으니 다만 믿어야 할 뿐이고, 추론적 사유로 알 수 없다(只應仰信 不可比量)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의상은 제자 오진(悟眞)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의 논리적 추론에 관한 질문에 대해 원효의 불지(佛智)에 대한 화쟁(和諍)의 논법으로 설명을 하고 믿음의 길을 열어 말씀하였다.

 

원효는 때로는 논리를 사용하고, 때론 논리를 넘어선다. 화쟁(和諍)의 논법과 불지(佛智)에 대한 믿음은 모두 논리를 초월한 곳에 자리한다고 하셨다. 원효는 유학을 위한 도당을 접고 신라로 돌아온 후 11년이 지나 55세가 되었을 무렵 행명사(行名寺)에서 판비량론(判比量論)을 탈고하였고, 말미에 다음과 같은 회향게를 적었다.

 

“증성(證成)의 도리는 생각하기가 지극히 어렵지만, 내 웃어 버리지 않고 조금이나마 쉽게 풀어, 이제 성스러운 불전에 의지해 그 일부를 제시하니, 불도가 소통되어 언제나 계속되기를 바라옵니다.”

 

한없이 깊은 존경(尊敬)과 숭앙(崇仰)으로 원효와 의상을 성인(聖人)으로 받들어 모시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제자들은 합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