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법계도(法界圖) (2)
“다음은 도인(圖印)의 모양을 나누어서(別解印相) 첫째는 도인의 모양(印文相)을 설명하고, 둘째는 글자의 모양을 밝히고, 셋째는 글의 뜻을 해석하기로 하겠습니다. 도인의 모양을 설명함(說印文相)에 있어서 어째서 오로지 도인(圖印)에 오직 한 길(一道)만 있는가 하면은 여래의 한 음성(一音)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번다하게 도는 굴곡이 많이 있는가 하면 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삼승(三乘)의 가르침에 해당합니다. 이 삼승(三乘)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을 의미하며, ‘승(乘)’은 부처님의 교법, 수행, 수행자의 모임 등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교법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의상은 삼승(三乘) 이외에 따로 일승(一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각(角, 三乘)을 통해 원만한 도인(圖印, 一乘)이 이루어지듯이 ‘삼승(三乘)’으로써 ‘일승(一乘)’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었다. 균여(均如, 923~973)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 인용된, 의상의 강의를 지통(智通)(655~?)이 기록한 지통기(智通記) 에서는 일승(一乘)을 기준으로 하여 설하면 삼승(三乘)이 곧 일승이며, 삼승(三乘)을 기준으로 하면 삼승과 일승이 차별을 이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어찌하여서 그 한 길(一道)에 시작과 끝이 없는가 하면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일정한 방법이 없어서, 법계(法界)에 응하여 걸맞고, 십세(十世)에 상응하여 원융만족(圓融滿足)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 뜻은 원교(圓敎)에 해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때 법계(法界)라는 것은 화엄 교학에서는 ‘우주 만유의 영역’을 의미하며, ‘일심(一心)’을 그 체(體)로 합니다. 여기서 원교(圓敎)라 함은 부족함이 없는 ‘원만한 가르침’을 뜻합니다. 지엄스님은 화엄(華嚴)을 일승원교(一乘圓敎)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상 또한 화엄의 가르침을 오직 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에 해당시키면서, 이를 한 길(一道)로 이루어 시작과 끝이 없는 원만한 ‘도인(圖印)’으로 상징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중국 화엄 교학은 이 법계를 나누어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4종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펼쳤다. 하지만 의상이 이 글에서 나타내고 있는 법계(法界)는 법계연기(法界緣起)에서의 법계만이 아니라, 여래 출현으로서의 여래성기(如來性起)를 모두 포함하는 일승법계(一乘法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상의 법계(法界)는 증분법성(證分法性)과 진성연기분(眞性緣起分)을 모두 포함하는 법계이며, 공간과 시간은 모두 이 법계 내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균여(均如)는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서 일반적인 법계의 의미와 더불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법계는 곧 ‘좋고 교묘한 가르침(善巧)은 일정한 틀이 없어서(无方) 법계 전체에 두루 응하고 십세(十世)에 상응하여 원융하여 만족시킨다고 하는데, 이 뜻은 바로 원교(圓敎)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이는 공간적 측면(橫盡法界)으로, 그리고 뒤의 십세(十世)는 시간적 측면(竪窮劫海)으로 해석한 후 선교방편(善巧方便)이 이 둘에 모두 원융만족(圓融滿足)하다고 설하였다.
“그러면 어째서 네 면과 네 모서리가 있는가 하면 바로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뜻은 삼승을 의지하여 일승(一乘)을 나타낸 것입니다. 보살이 중생을 섭수하여 불도(佛道)로 나아가 깨닫게 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보시섭(布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동사섭(同事攝)이 있는데, 이것은 아함경(阿含經) 이래 전해져 내려온 전통적인 선행(善行)으로서, 화엄경에서도 또한 설해지고 있으며, 특히 십지품(十地品)에서는 초지인 ‘환희지(歡喜地)’부터 제4지인 ‘염혜지(焰慧地)’에 머무르는 보살의 대표적 수행법입니다. 그리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은 모든 불보살(佛菩薩)이 한량없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갖추는 네 가지 마음으로, 자무량(慈無量), 비무량(悲無量), 희무량(喜無量), 사무량(捨無量)이 있는데, 화엄경에서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모든 불보살이 나타내는 무량한 공덕 중의 하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여러분들이 자주 질문하셨던 일승(一乘)이라 함은 바로 ‘오직 하나의 수레’란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직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화엄 교학에서는 이 일승을 삼승과 일승이 융회(融會)해서 같다는 상대적 견지의 동교일승(同敎一乘)과, 삼승과 다르다는 의미, 즉 삼승을 초월한다는 절대적 견지의 별교일승(別敎一乘)으로 구별하고 있으며, 이러한 화엄 교학을 바로 이 별교일승에 해당시킵니다.”
의상은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 도인(圖印)의 4면 4각 내지 54각이 바로 일승을 상징하는 하나의 줄, 즉 도인이며, 이 굴곡들을 떠나서 따로 도인을 구할 수 없음을 설하여 삼승의 가르침을 배제하고 따로 일승의 수행법이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원교(圓敎)의 종요(宗要)는 일승법계도와 같은데 어째서 ‘법계’만을 들어서 제목에 넣으셨는지 어쭈어 봐도 될런지요?” 양원(良圓)의 질문이었다. 그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주석서를 저술하며 의상의 교학을 체계화한 인물로 평가되며, 의상의 부석사(浮石寺) 문하에서 화엄경을 수학한 후, 화엄십찰(華嚴十刹)의 설립과 교학 보급에 참여했다. 사영(四英) 중 한 명으로 꼽히며(진정·상원·표훈과 함께), 그의 활동은 주로 부석사와 해인사 등 화엄 중심 사찰에서 이뤄졌다.
“이 화엄경의 근본 주장에 대하여 대원법사(大遠法師, 慧遠, 523~592)는 화엄삼매(華嚴三昧)가 근본 주장이라고도 했고, 또 유 법사(裕法師, 靈裕, 518~605) 등은 법계의 마음(心)과 경계를 근본 주장이라고도 했으며, 법장(法藏)스님은 인과·연기(因果緣起)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근본 주장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 스님들이 모두 이 화엄경은 법계를 근본 주장으로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 경전들 전체의 근본(體)이며, 모든 존재들 전체의 의지하는 바이며, 일체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근본이기 때문이며, 또한 일체 부처님들이 완전히 깨달은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보살들의 수행이 여기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며, 처음 깨달음을 이루시고 곧바로 말씀하신 것으로, 다른 경전들이 점차적으로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주(圖主)인 나 또한 근본 주장에서 뜻을 취하여 제목에 넣은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징관(澄觀)스님은 ‘여러 오묘함을 포함하고도 남음이 있고 언어를 초월하여 멀리 나아간 것은 아마도 오직 법계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법계를 근본 주장(宗)으로 한다면 부처가 이루는 수행의 공덕을 잃게 되고, 인과를 근본 주장으로 한다면 의거하는 바의 법계를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밝힌다면 지금 다만 법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뜻이 완전하지 못하므로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닐지요?” 양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잘못을 밝힌다고 한 까닭은 법계를 이야기할 때에는 다만 참된 법계만을 이야기하고, 인과를 얻는 것을 말할 때에는 수생(修生)에만 국한되기 때문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통(光統, 慧光, 468~537)은 인과(因果)와 이실(理實)을 근본 주장이라고 하여 의거해야 할 진리에 의거하여(所依) 수행하는 수행자를 갖추어서(能依) 뜻과 이치가 두루 원만하였고, 더불어 법장스님은 광통의 설에다가 연기와 법계를 더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과를 법계에 합한 것으로서 법계와 인과가 모두 법계가 되는 것이고, 또한 법계를 포섭하여 인과를 이룬 것으로서 인과와 법계가 모두 인과가 됩니다. 앞의 입장을 따르면 법계를 근본 주장이라고 하여도 인과를 잃지 않고, 뒤의 입장을 따르면 인과가 근본 주장이 되어도 법계를 잃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은 도리에 의거한다면 다만 법계라고 이야기하여도 한쪽 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두순(杜順)화상의 삼관(三觀)중에서 진공관(眞空觀)은 이법계(理法界)이고,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이며,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인데,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법계는 어느 법계에 해당하는지요?”
“앞의 두 가지는 동교(同敎)에 해당하고, 뒤의 하나가 별교(別敎)에 해당합니다. 지금 이 법계는 오직 십현(十玄)과 십문(十門)의 법을 모두 갖추어 두루 포괄하기 때문이며, 십불(十佛)과 보현보살의 법계의 집에서는 이와 같은 막힘이 없는 법계 법문이 지극히 자재(自在)하기 때문에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인(圖印)의 모양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으론 글자의 모양을 밝혀 보면(明字相), 글자 중에 시작과 끝이 있는 이유는 바로 수행의 방편을 기준으로 하여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글자 중에 굴곡이 많은가 하면, 삼승의 근기와 욕망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의 두 글자를 한 가운데에 둔 이유는 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법성(法性)의 집안에서 진실한 덕용(德用)이며, 성(性)이 중도(中道)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 덕용(德用)이라 함은 원인에 즉하여 결과가 바로 있는, 원인 외에 따로 결과가 있지 않은 인과의 ‘당체(當體)’로서의 ‘용(用)’이므로 ‘체(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의상은 인과의 ‘덕용’인 ‘덕용자재문(德用自在門)’을 상즉(相卽)에 해당시키고, 반면 상입(相入)은 인과의 도리인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에 배대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도(中道)라 함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두 극단을 여읜 길’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는 욕망과 즐거움에만 집착하는 한 극단과 극도의 고행(苦行)에만 몰입하는 다른 한 극단을 모두 여읠 때 ‘중도’가 있으며 이것이 곧 ‘팔정도(八正道)’라고 설하신 바가 있습니다만, ‘중도’는 이후 생겨난 모든 불교 경론에서 설하는 실천 수행의 근간으로 자리 잡아 왔으며, 각 학파마다 ‘중도’의 의미에 대해서 고락중도(苦樂中道), 유무중도(有無中道), 허실중도(虛實中道), 팔부중도(八不中道)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균여(均如)는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서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의 중도는 원인과 결과(因果), 일승과 삼승(一乘三乘), 바른 뜻과 바른 교설(正義正說), 이와 사(理事), 하나와 많음(一多)등 일체법에 대한 일곱 가지의 중도설로 정리한다. 첫 번째의 중도는 원인(因)과 결과(果)가 같지 않으면서도 분별이 없기 때문에 성품이 중도에 있다고 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일승과 삼승이 한 몸으로서 둘이 아니라는 중도이며, 세 번째는 증분(證分)과 교분(敎分)의 두 법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중도이며, 네 번째는 정의(正義)와 정성(正說)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중도이며, 다섯 번째는 이치와 현상의 두 법이 그윽하게 일치하여 다르지 않다는 중도이며, 여섯 번째의 중도는 하나와 전체가 둘이 아니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중도이며, 일곱 번째는 이 법계도의 ‘실제의 중도’는 일체 모든 법에 다 통하는 중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법계도에서 ‘법성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습이 없고..... 먼 옛날부터 움직임이 없으며 부처라고 이름한다’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생겨나는 것과 생겨나지 않는 것이,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차별 있고 상대되는 법들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전에서 ‘유위와 무위의 일체 제법은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본성(性)과 모습(相)이 상주(常住)하여 변화되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한 것이 바로 그 뜻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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