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법계도(法界圖) (3)
“일승의 십불(十佛)은 대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소승과 삼승의 이신불(二身佛: 法身, 應身)이나 삼신불(三身佛: 自性身, 受用身, 應化身)등을 어떻게 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양원은 원교(圓敎)의 대성과 오교(五敎)의 대성의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비록 십불(十佛)이 아니지만, 교화의 대상이 되는 중생을 대할 때에는 또한 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삼승과 이승의 가르침은 모두 이 화엄경 안에 있으니 모두 십불(十佛)이 말씀하신 것입니까?” 양원은 일승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이 또한 십불(十佛)이 말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불(十佛) 이외에 별도의 삼신불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신불은 십불(十佛)이 작용한 것(用)이니, 삼승이 곧 일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승(一乘)에 입각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르침의 종지(宗旨)에 의거하여 말씀할 수도 있으니, 삼승의 가르침은 삼신불이 말씀하신 것이고 일승의 가르침은 십불(十佛)이 말씀하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중생의 근기와 보는 바가 같지 않고, 같은 때 같은 곳에 있어도 부처님은 좋고 교묘한 가르침(善巧)으로 응하지 못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삼도(三途: 삼악도를 가리킴)의 중생이 듣는 가르침은 삼도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인승(人乘)과 천승(天乘)의 중생이 듣는 가르침은 인천승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일승(一乘) 근기의 중생이 듣는 가르침은 일승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각각 교화하는 부처님과 교화되는 중생이 서로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의상은 비록 근기에 응하는 것이니 같지 않다지만 대성이라고 이야기할 때에는 오직 원교(圓敎)의 대성만을 가리킨다고 말씀하고 있었다.
“일승(一乘)의 연기법은 구별하는 마음(情)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구별하는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멀리 다른 곳에서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별하는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구별하는 마음을 돌이키는 방편은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될런지요?”
“방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요체는 보는 바가 있는 곳마다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고, 법을 들은 바가 있는 곳마다 들은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말미암는 바를 이해할 수 있고, 또 법의 진실된 본성(實性)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진실 그대로의 법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여쭈어봐도 될런지요?” 양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법의 진실된 본성은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무주이므로 반드시 의거해야 하는 법이 없고(無可約之法), 반드시 의거해야 하는 법이 없으므로 분별의 모습이 없습니다(無分別相). 분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마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非心所行處).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이고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법의 진실된 모습(實相)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은 법계의 연기로 말미암아 육상(六相)이 서로 녹아 들어가서(鎔融) 인(因)과 과(果)가 동시에 일어나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즉 보편과 개별이 모두 만족하고, 처음과 마지막이 나란하며 처음 발심한 때에 곧바로 정각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육상설(六相說)은 무분별 부주(不住)의 중도의(中道義)를 드러내는 방편으로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어서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일승과 삼승도 또한 이와 같아서 주(主)와 반(伴)이 서로 도와서 즉(卽)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비록 중생을 이롭게 하나, 오직 중도(中道)에 있어서 법을 드러냄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因)은 보현보살이 이해하고 수행하여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과(果)는 십불(十佛)의 경계에 드러나는 무궁무진함인 것입니다.
그대가 문의한 것도 뜻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도인(圖印)의 처음의 굴곡은 원인과 같고, 뒤의 굴곡은 결과와 같습니다. 처음과 뒤가 같지 아니하나 오직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이, 비록 원인과 결과의 뜻은 다르나 오직 스스로 그러함(自如)에 머무른다는 말씀입니다.
삼승의 방편의 가르침에 의하므로 높고 낮음이 같지 않으나, 일승원교(一乘圓敎)에 의하므로 앞과 뒤가 없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알 수 있는 것은, 화엄경에서 말씀하기를, ‘또 모든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의 광명을 설하여 지혜의 자리(智慧地)에 들어가게 하려는 까닭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이때 모든 보살(一切菩薩)이란 신(信)·행(行)·지(地)에 머무르는 자를 말합니다.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不可思議諸佛法)’이란 출세간도(出世間道)의 덕목입니다.
지엄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부처님의 법의 ‘광명(明)’이란 봄(見)과 지혜(智)와 얻음(得)과 깨달음(證)인데 ‘봄(見)’을 관(觀)하는 깨침(解)의 처음으로, ‘지혜(智)’를 관(觀)하는 깨침(解)의 끝으로, ‘얻음(得)’을 행하는 깨침(解)의 처음으로, ‘깨달음(證)’을 행하는 깨침(解)의 끝으로 말씀하시며, ‘광명’이 결국 관행(觀行)에 모두 두루 하는 것(又見智得證者 前二觀解 後二行解 見始智終 得始證終也)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지혜(聞慧)’라 하면 ‘들어서 이루어진 지혜(聞所成慧)’를 가리킵니다. 이때의 지혜(慧)라는 것은 ‘생각하여 이루어진 지혜(思所成慧)’와 ‘닦아서 이루어진 지혜(修所成慧)’와 함께 ‘세 가지 지혜(三慧)’를 이루는데, ‘듣는 지혜’를 물은 씹지 않아도 바로 마실 수 있는 것에 비유하여 들으면 바로 받아 지니는 지혜로, ‘생각하는 지혜’를 음식을 씹어 먹어서 몸에 도움을 주는 것에 비유하여 들은 법을 곱씹어서 증장하는 지혜로, ‘닦는 지혜’를 꿀이 벌들이 좋아하는 의지처가 되는 지혜로 비유하여 ‘듣는 지혜’와 ‘생각하는 지혜’의 과보(果報)가 의지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시 자세히 말씀해보면, 근본에 들어감(根本入)에 의하여 아홉 가지의 지혜(智慧)에 들어감(九種入)이 있습니다. 첫째는 포섭에 들어감(攝入)입니다. 듣는 지혜(聞慧) 가운데 모든 선근(善根)을 포섭하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모든 선근을 포섭하게 하려는 까닭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선근(善根)이라 함은 모든 선법(善法)을 일으키는 근본으로,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의 세 선근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선근(善根)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는데, 불가사의한 일체법 가운데에는 본래 삼독이 없으므로,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세 선근이 항상 있지만, 다만 중생이 그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현전하지 못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생각하고 헤아림의 들어감(思議入)입니다. 생각하는 지혜(思慧)가 모든 도의 덕목(道品) 중에 지혜의 방편이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모든 불법을 잘 분별하여 선택하게 하려는 까닭이다(善分別一切佛法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셋째는 법의 모양에 들어감(法相入)입니다. 이러저러한 뜻(義) 가운데 한량없이 갖가지로 알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모든 법을 널리 알도록 법의 지혜를 넓히게 하려는 까닭이다(廣法智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넷째는 교화에 들어감(敎化入) 입니다. 생각하고 헤아린 것을 따라서, 말(名字)을 갖추어져 법을 잘 설하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모든 법을 결정하여 잘 설하게 하려는 까닭이다(決定說諸法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다섯째는 깨달음에 들어감(證入)입니다. 모든 법에 평등한 무루지(無漏智)를 얻어 사제(四諦)를 현관(現觀)하고 그 이치를 비추어 수행하는(見道) 지위가 매우 청정하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분별없는 지혜(無分別智)’가 청정하여 잡되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다(無分別智善分別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곧 스스로 불법을 이루는 것이니, 그래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또한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게으르지 않음에 들어감(不放逸入)입니다. 수행하는 때에 모든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일체 세간법(魔法)이 물들일 수 없게 하려는 까닭이다(一切世間法不能染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일곱째는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에 들어감(地地轉入)입니다.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덕목인 무탐(無貪) 등의 선근이 청정하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세간을 벗어나는 법인 선근을 청정하게 하려는 까닭이다(出世間善根淸淨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또 선근이 있어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덕목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덟째는 보살로서 마지막에 들어감(菩薩盡入)입니다. 제십지(第十地)에서 모든 여래의 비밀스러운 지혜(智慧)에 들어가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불가사의한 경계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다(得不可思議智力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홉째는 부처로서 마지막 경지에 들어감(佛盡入)입니다. 일체의 지혜(一切智)에 들어가는 지혜이기 때문이니, 화엄경에서 ‘일체의 지혜를 갖춘 사람의 지혜의 경계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다(得一切智人智境界故)’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의상은 이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 ‘지혜(智慧)’의 뜻의 차별을 자세히 비교하였고, 또한 화엄경 전체가 종국적으로는 ‘십지(十地)’에 모두 포섭되며, 나아가 이 십지(十地)는 단지 일념(一念)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삼세(三世)와 구세(九世)가 곧 일념(一念)이기 때문이니, 일체가 곧 하나인 까닭이라는 말씀이었다. 일념처럼 다념(多念) 또한 이와 같으며, 하나가 곧 일체여서, 일념이 곧 다념 등인 이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여섯 종류의 차별의 모양(六相)에 대해 다시 설명해 보면, 차례로 총상(總相)인 전체로서의 모습이며, 곧 근본에 들어감이고, 별상(別相)인 부분의 각각의 모습이자, 나머지 아홉 가지에 들어감이며, 개별(別)이 근본(本)에 의지하여 저 근본(本)을 만족시키는 까닭이고, 동상(同相)은 서로 같은 목적이나 성격을 공유하는 모습이며, 서로 서로에 들어감이기 때문이고, 이상(異相)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는 모습이며, 서로 늘어나는 모양이기 때문이고, 성상(成相)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성립하는 모습이며, 괴상(壞相)은 성립된 것이 흩어지거나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육상(六相)은 바로 해행(解行)의 인(因)이 되어서 과해(果海)에 이르는 중요한 방편이 됩니다.
그러므로 비록 원인과 결과인 신(信)·해(解)·행(行)·회향(廻向)·지(地)·불(佛)이 각자의 자리를 움직이지 아니하되, 또한 모든 법이 각각 달라서 스스로 여여(如如)함에 머무르기 때문에, 경에서 이르기를, ‘무엇이 부처님의 법을 깊이 믿는 것인가? 일체 모든 법이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바이고 나의 경계가 아니니, 만약 이와 같다면 부처님의 법을 깊게 믿는다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육상(六相)’이란 무슨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가 하면 바로 연기(緣起)의 무분별(無分別)한 도리를 나타내기 위한 까닭입니다.
이러한 이치로써, 이 다라니(陀羅尼)법은 주(主)와 반(伴)이 서로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한 법을 ‘듦’에 따라서 일체를 다 포섭합니다. 만약 모임(會)을 기준으로 설하면, 각각의 모임 가운데 일체를 다 포섭합니다. 만약 품(品)을 기준으로 설하면, 각각의 품이 일체를 다 포섭합니다. 내지 문장을 기준으로 하면, 각각의 문장과 구절이 일체를 다 포섭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은 만약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화엄경 60권본과 80권본의 그 세부 내용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처님의 법을 듣고 지녀서 잊지 않음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의상 또한 다라니를 ‘듣고 받들어 지녀서 잊지 않는 구체적 행위’인 ‘총지(總持)’라고 해석하면서, 동시에 일승의 다라니법이 바로 연기의 체(體), 즉 진성(眞性)임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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