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9권 《화엄경문답》 - 제1장 천도(薦度)

qhrwk 2026. 5. 24. 05:57

 

 

제1장 천도(薦度)

 

“불법을 배우는 것은 천겁(千劫)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기회다. 나 때문에 네가 도를 닦지 못한다면 내 업보가 어찌 되겠느냐? 걱정 말고 어서 떠나거라.”

 

진정(眞定)은 출가 전, ‘양주(良州 : 현 경상남도 양산시 일대)’의 성 바깥에 살았다. 군인 신분(역졸)이었으며, 집에는 재산이 없어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와 홀어머니를 봉양했었다. 아내를 얻지 못한 이유도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출가의 염원이 있었으나, 홀로 계신 노모를 두고 차마 떠날 수가 없어 늘 번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진정은 의상 스님께서 태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가고 싶어졌다. 이를 눈치챈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은 망설였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어찌 저만 떠납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집에 남은 쌀 한 되를 몽땅 털어 밥을 지어주며 말했다. “지금 이 밥을 먹고 바로 떠나거라. 네가 문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이미 죽은 것이라 생각할 터이니 뒤도 돌아보지 말거라.”

 

어느덧 진정이 출가한 후, 태백산에서 수행에 정진한 지 삼 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진정은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를 위해 깊은 삼매(三昧)에 들었고, 스승인 의상에게도 이 사실을 고하게 되었다.

 

의상은 제자 진정의 효심과 구도심을 가상히 여겨, 칠일 동안의 진정의 어머니를 위한 극락왕생 법회를 마친 후, 오늘은 마지막 천도(薦度) 법문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 법문을 마치고 난 이후에는, 의상은 제자들을 이끌고 소백산 추동(錐洞 (송곳골) : 현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일대)으로 가서 진정의 어머니를 위한 90일간의 화엄경 법회를 열기로 하였다. 제자의 개인적인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법회를 열어 슬픔을 승화시킨 자애로운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설법의 공덕으로 진정의 어머니는 도리천에 환생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선망 조상님들을 천도(薦度)해서 잘 모시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땐 소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기와를 이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육신을 벗어버린 분들을 천도(薦度)를 해서 어디에 모실지 그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천도(薦度)라는 말은 ‘옮겨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거꾸로 선 것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천도(薦度)입니다. 인색한 것을 바꾸어서 너그러움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또한 천도(薦度)입니다.

 

육신이 없는 그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집은 어떤 것으로 지어져야 머무르실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세상의 아무리 좋은 석물로 기둥을 만들고 지붕으로 이어도 그러한 곳에는 머무르시지 않습니다. 그럼 이분들은 어떤 집에 머무르시는가?

 

첫째, 환희융화위보망(歡喜融和爲寶網)이라!

 

남아 있는 가족들이 그리고 그분들과 인연이 있는 모든 분들이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환희심(歡喜心)을 일으켜야 된다고 합니다. 그 환희심으로 기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환희심은 매사에 긍정적이면서 서로 화합하며,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눌 때 환희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다툼을 서로서로 화해 해서 융화(融和)를 하는 마음으로서 하나의 보배 그물 같은 빛이 되어서 지붕을 만든다고 그럽니다. 사방에 환희심이라고 하는 기둥을 세우고 시비를 그치게 하는 융화심으로써 지붕을 얻는다고 그럽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보면 선재 동자가 만나는 법보계장자(法寶髻長者)와 사자빈신비구니(師子頻申比丘尼)의 거처는 물질적인 벽돌로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보배 그물과 광명의 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거처는 과거에 닦은 보살의 행(願 : 서원)과 자비심(慈悲心)이 응집되어 나타난 '광명의 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희심을 내면, 그 마음이 곧 법계 우주를 장엄하는 보배 기둥이 되고 그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선재동자는 산란함이 없는 깊은 삼매에 머무르는 사자궁성(師子宮城)에 이르러 법보계장자를 친견하여 장자가 살고 있는 여덟 개의 큰문이 있는 10층으로 된 아름다운 누각을 보았습니다. 장자는 그 10층의 누각의 층층이 열 가지의 귀한 보배로 보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된 인연은 과거 미진수 겁 전에 부처님 전에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지혜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덕보배창고(福德寶藏)의 무진장법문(無盡藏法門)을 얻었으며, 무치란행(無癡亂行)을 증득하였습니다.

 

선재동자가 친견한 사자빈신비구니(師子頻申比丘尼)는 승광왕(勝光王)이 보시한 일광(日光)동산에서 법을 설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습니다. 일광동산에는 칠보(七寶)로 된 연못에 금모래가 깔리고, 팔공덕수(八功德水)가 넘쳐흐르고, 잎나무, 꽃나무, 과실나무, 마니보배나무, 음악나무, 의복나무, 향나무가 즐비하였고, 갖가지 영롱한 보배풍경이 저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여래와 중생에 대한 분별심을 여읜 공덕으로 성취일체지법문(成就一切智法門)을 얻었으며,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을 증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환희(歡喜)롭고, 융화(融和)하고, 자비(慈悲)스러운 마음으로서 하나의 보배 그물 같은 빛이 기둥과 그물의 지붕이 되는 대목입니다.

 

둘째, 안도중생안중방광(安睹衆生眼中放光)이라!

 

어려운 이웃 사람들이 평안히 지낼 수 있도록 하려는 마음에서 항상 그들의 고통을 살펴보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하면 그 살펴보는 눈빛에서는 무한히 맑은 빛이 흘러 나와서 바람이 통하지 않는 그 집의 벽을 만들게 됩니다.

 

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 보면 중생의 고통을 살피는 눈이 곧 부처님의 지혜 등불이 되는 수행의 대목이 있습니다.

 

‘불자여,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큰 보배 덩이로써 모든 공덕의 큰 지혜 창고가 되나니(佛子 諸如來身 亦復如是 爲大寶聚一切功德大智慧藏),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의 보배 지혜광명이 닿으면(若有衆生 觸佛身寶智慧光者) 부처님의 몸빛과 같아지고(同佛身色), 만약 그 빛을 보는 이는(若有見者) 법의 눈이 청정하여지며(法眼淸淨), 그 광명이 비치는 곳에는 모든 중생들이 빈궁한 고통을 여의게 되며(隨彼光明 所照之處 令諸衆生 離貧窮苦) 내지 부처님 보리의 낙을 구족하게 되느니라(乃至具足佛菩提樂)’고 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의 보배 지혜광명에 닿으면 부처님의 몸빛과 같아진다는 말씀입니다. 또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의 보배 지혜광명을 보면 법의 눈이 청정하여지며 또 그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모든 중생들이 빈궁한 고통을 여의게 되며, 또 부처님 보리의 낙을 구족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로 여래 지혜의 가르침을 잘 듣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점철성금(點鐵成金)과 같아서 아주 특별한 과일이 있는데 그 과일의 즙이 쇳덩이에 떨어지면 그 쇳덩이가 금으로 변하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지리일언이 혁범성성(至理一言 革凡成聖)하는 이치입니다. 즉, 여래의 진리의 가르침 한 마디가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여래의 지혜광명의 위신력은 이와 같습니다.

 

또 여래의 몸 여의주 보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케 함’이라 이름 하나니(如來身如意寶王 亦復如是 名爲能令一切衆生 皆悉歡喜), 만일 그 몸을 보거나 이름을 듣고 공덕을 찬탄하면 생사의 고통을 아주 여의며(若有見身聞名讚德 悉令永離生死苦患) 가령 모든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한꺼번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여래를 보고자 하더라도 모두 보고 소원이 만족하게 되느니라(假使一切世界一切衆生 一時專心 欲見如來 悉令得見 所願皆滿).’ 고 하였습니다. 여래의 여의주 마니보배는 일체중생들을 환희하게 함으로 만일 그 몸을 보거나 이름을 듣고 공덕을 찬탄하면 생사의 고통을 아주 여의게 됩니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눈이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비록 태양을 보지 못하며 본 적도 없지만(生盲衆生 無眼根故), 그러나 태양으로부터 받는 수많은 이익은 눈이 밝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雖未曾見 然爲日光之所饒益)고 하셨습니다. 여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아서 믿음이 없고 이해가 없고 계율을 파하고 바른 소견이 없고 잘못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비록 부처님의 지혜의 해를 보지는 못하지만, 부처님의 지혜의 해의 이익은 받는 것입니다.

 

셋째, 이타영청이중방광(耳朶聆聽耳中放光)이라!

 

귀는 누군가의 허물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고충을 들어주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후련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그럽니다. 귀로는 누군가의 고통을 들어 줌으로써 내 귀에서는 맑은 빛이 쏟아져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 광명으로써 집의 천장을 만든다고 그럽니다. 이제 선망 조상님들께서 머무르실 수 있는 집이 지어졌습니다. 그 환희(歡喜)와 융화(融和)의 집에 머무시면서 항상 자손들과 당신들과 인연 있는 이웃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넷째, 참괴감은위항수석(慚愧感恩爲行樹石)이라!

 

스스로 행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고 인정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겸손하다고 그랬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한 걸음 더 승화된 위치로 나아가 발전할 수 있으며, 삶을 보다 당당하게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그 마음으로 그 마당의 아름다운 마음의 정원수를 나란히 심으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써 빛이 나는 마음의 정원석을 놓으라 그랬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낼 때마다 정원에는 하나씩 아름다운 마음의 정원수가 쑥쑥 새로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런 마당의 모습을 선망 조상님들께서 보시면 자손들이 참으로 복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아신다고 그럽니다.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보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청정(十種淸淨) 또는 보살의 수행 장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보살마하살은 참괴로 옷을 삼고(慚愧爲衣), 선법으로 집을 삼으며(善法爲舍), 자비로 동산을 삼고(慈悲爲園), 지혜로 연못을 삼느니라(智慧爲池)’고 하였습니다.

 

특히 찬탄(讚歎)과 애어(愛語)를 연못의 물에 비유한 것은, 화엄경에서 육바라밀(六波羅密)과 사섭법(四攝法)으로 대승(大乘)을 출생한다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 법에 ‘붙들림’이니라(知六波羅蜜四攝法 出生大乘 法所攝持)고 말씀하면서, 이 사섭법(四攝法 :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이야말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맑은 물’과 같다는 가르침입니다. 보살대승(菩薩大乘)은 육바라밀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또 사섭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잘 아는 것이 또한 부처님 법에 ‘붙들림’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찬탄애어위지수(讚歎愛語爲池水)라!

 

아울러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정원에 어느 날 하늘에 달이 뜨면 은은한 달빛이 비춰지게 되는 연꽃으로 그득한 연못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그 연못은 무엇으로써 만드는가?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내리더라도 이 연못에는 물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리 내가 힘들더라도, 마음속에 사랑스럽고 자비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누군가에게 찬탄(讚歎)하는 말을 할 때마다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말이 빛이 되어 나와서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이슬방울로 변하여, 그 마당의 연못이 그득 채워지게 된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자손들의 따듯한 마음으로 연못이 가득 차면 하늘의 달빛이 은은하게 그 연못에 비치게 되는데, 그때 환희(歡喜)와 융화(融和)의 집에 머무르시던 선망 조상님들께서 마당에 나오셔서 연못에 비친 달빛을 보고 감탄하며 자손들에게 좋은 기운의 음덕(陰德)을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당신들의 핏줄이지만, 달빛을 보러 마당에 나오셨다가 만약 연못이 말라 있으면 그 자손들이 마땅히 해야 할 행을 할 줄 모르고, 내어야 할 마음을 낼 줄 모르는 자손들을 보시고는, 그 자손들에게 어떻게 음덕을 내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선망 조상님들을 저 환희와 융화의 집에 마음껏 모시고 마당의 연못에는 찬탄(讚歎)과 애어(愛語)라는 물로 넘치도록 채워서, 가끔 마당에 나오셔서 하늘의 달도 비추어 보고 별도 비추어 보고 또 그 그득히 채워져 있는 연못 속을 들여다보시고는 감탄하시며 자손들에게 음덕을 내려 주시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섯 째, 자비희사위통도(慈悲喜捨爲通道)라!

 

마지막으로, 항상 선망 조상님들께 안부를 여쭈러 갈 수 있고, 또 그분들이 자손들에게 음덕을 내려 주시러 오실 수도 있는 길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길은 사무량심(四無量心 : 大慈心, 大悲心, 大喜心, 大捨心)으로 만들어진다고 그랬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가시를 뽑아내어 주려는 자비로운 마음을 내고, 그 고통이 뽑혀진 자리에는 기쁨으로 채워주겠다는 맑은 마음을 내고, 누군가의 좋은 일에는 흠뻑 같이 기뻐해 주는 밝은 마음을 내고,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각박한 마음을 녹여 내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는 넓은 마음을 내면 그 자리에는 큰 사통팔달의 길이 생긴다 그랬습니다.

 

이 네 가지 큰 마음은 넓은 가슴으로, 친하든 친하지 않든 항상 남의 허물을 용서할 줄 알고 상대방의 안타까움을 껴안아 줄 수 있는 무한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그 마음을 낼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말을 아끼고(杜口), 아만심(我慢心)을 꺽고, 끊임없이 떠오르는 망상(妄想)을 꺾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그리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꺾고, 값을 매길 수 없는 베품(布施)과 인욕(忍辱)의 보배(寶)를 소유한 그런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이런 자손들이 살아가는 이곳은 끊임없이 꽃비가 내리는 축복의 화우동산(花雨東山)이며, 선망 조상님들의 맑고 밝은 음덕양보(陰德陽報)의 길이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의 비로자나장엄장대누각(毘盧遮那莊嚴藏大樓閣)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문을 통과해야 하며, 그 길은 오직 보살행을 닦은 자에게만 보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 어지신 이들이여, 이 장자의 아들은 네 강에 표류하는 이를 위하여(諸仁者 此長者子 爲被四流漂汨者) 큰 법의 배를 만들고(造大法船), 소견의 수렁에 빠진 이를 위하여(爲被見泥沒溺者) 큰 법의 다리를 놓고(立大法橋), 어리석음의 캄캄한 밤에 헤매는 이를 위하여(爲被癡暗昏迷者) 큰 지혜 등불을 밝힙니다(然大智燈).

 

생사의 벌판에 다니는 이들을 위하여(爲行生死曠野者) 성스러운 길을 열어 보이고(開示聖道), 번뇌의 중병에 앓는 이를 위하여(爲嬰煩惱重病者) 법의 약을 만들고(調和法藥), 나고 늙고 죽음에 고통받는 이에게는(爲遭生老死苦者) 감로수를 먹여(飮以甘露) 그들로 하여금 편안케 합니다(令其安隱).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에 들어 있는 이에게는(爲入貪恚癡火者) 선정의 물을 부어 서늘케 하고(沃以定水 使得淸凉), 근심 걱정이 많은 이는 위로하여 편안케 하고(多憂惱者 慰喩使安), 존재의 옥에 잡힌 이는 깨우쳐서 나오게 하며(繫有獄者 曉誨令出), 소견의 그물에 걸린 이는 지혜의 검으로 벗겨줍니다(入見網者 開以智劍).

 

십팔계(十八界)의 성(城)에 있는 이에게(住界城者)는 해탈할 문을 보여주고(示諸脫門), 험난한 데 있는 이(在險難者)는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고(導安隱處), 결박의 도둑을 무서워하는 이(懼結賊者)는 두려움 없는 법을 주고(與無畏法), 나쁜 길에 떨어진 이(墮惡趣者)는 자비한 손을 주고(授慈悲手), 쌓임(蘊)에 구속된 이(拘害蘊者)는 열반의 성(城)을 보여줍니다(示涅槃城).

 

네 가지 뱀(界蛇 :지, 수, 화, 풍, 사대)에 감긴 이(界蛇所纏)는 성인의 길로 풀어주고(解以聖道), 여섯 군데 빈 마을(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진(六塵))에 집착한 이(着於六處空聚落者)는 지혜의 빛으로 이끌어 내고(以智慧光 引之令出), 삿된 제도(邪濟)에 머문 이(住邪濟者)는 바른 제도에 들게 하고(令入正濟),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하는 이(近惡友者)는 선한 동무를 소개하고(示其善友), 범부의 법을 좋아하는 이(樂凡法者)는 성인(聖人)의 법을 가르치고(誨以聖法), 생사에 애착하는 이(着生死者)는 일체 지혜의 성(城)에 나아가게 합니다(令其趣入一切智城).’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집을 녹이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넓은 길로 나아가는 수행은 바로 보현행원(普賢行願) 중 항순중생(恒順衆生 : 중생에게 기쁘게 순응함)과 보개회향(普皆迴向 : 모든 공덕을 남에게 돌림)을 통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리심(菩提心)의 문(門)과도 같으니, 중생 구제의 행(行)인 화엄일승(華嚴一乘)의 보살행(菩薩行)을 열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미륵보살장(彌勒菩薩障)의 보리심(菩提心)의 공덕을 같이 읽으면서 회향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리심은 종자(種子)와 같으니, 능히 모든 불법을 내는 이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궁전과 같으니, 삼매의 법에 편안히 있어 닦게 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공원과 같으니, 그 안에서 유희하면서 법의 즐거움을 받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집과 같으니, 일체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돌아갈 데가 되나니, 일체 모든 세간을 이익케 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의지할 데가 되나니, 모든 보살의 행이 의지한 곳인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자비하신 아버지와 같으니, 일체 모든 보살을 훈계하여 지도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인자한 어머니와 같으니, 일체 모든 보살을 낳아 기르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유모와 같으니, 일체 모든 보살을 양육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착한 벗과 같으니, 일체 모든 보살을 성취하여 이익케 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국왕과 같으니, 일체 이승(二乘) 사람들보다 뛰어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제왕과 같으니, 모든 원(願)에서 자유자재한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큰 바다와 같으니, 모든 공덕이 다 그 가운데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수미산과 같으니,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이 평등한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철위산(鐵圍山)과 같으니, 일체 모든 세간을 거두어 가진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설산과 같으니, 모든 지혜의 약풀을 자라게 하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향산(香山)과 같으니, 모든 공덕의 향을 내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허공과 같으니, 묘한 공덕이 넓어서 그지없는 연고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은 연꽃과 같으니, 모든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 연고입니다.”

 

의상은 내가 비록 작은 존재일지라도, 내 안에 우주의 전체성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 저 사람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인드라망의 비유로 체계화한 진정한 자비심으로, 지금 이 순간을 무분별(無分別)과 무주(無住)의 지혜로 사는 것이 결국 영원의 무한한 시간을 사는 것임을 강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