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의 탐구이다. 질문이 아니라 탐구이다. 질문은 지적知的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탐구는 실존적 구도求道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우리 존재에 대한 해답을 알아내야 한다.
질문은 타자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탐구라고 말하는 것이다. 탐구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애초부터 모든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내면에서 큰 질문 하나가 생긴다. 우리는 그 질문을 억눌러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다른 질문으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 질문 자체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 질문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그 질문을 없앨 방법은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우리 의식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그 질문이 우리의 가장 내적인 본성이라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탐구를 하게 된다. 물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 탐구는 온갖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복합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곳에 도달하기란 거의 드문 일이다. 하지만 그대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끊임없는 고뇌와 혼란에 빠져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야생의 숲에서 울부짖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과연 어떻게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면, 축복은 있을 수 없다.
그대는 ‘만족’이나 ‘지복’이라는 단어를 듣겠지만, 그것들은 단지 단어로 남고 만다. 그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내용이 되지 못한다. 그 내용은 그대 자신의 경험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것들은 공허한 단어로 남고 말 것이며, 그대 주변에서 많은 소음을 만들어낼 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구도는 인간 본성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문제가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말했다.
“인간의 불운은 그 자신의 위대함에는 원천이 된다. 인간 안에 무한한 것이 존재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유한한 세계에 묻어버리는 데 성공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 안에는 그대보다 더 높고 큰 차원의 뭔가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유한한 세계 어딘가에 묻어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대는 자기 자신의 삶에서 그런 면을 볼 수 있다. 그대는 돈과 권력을 추구할 수 있지만, 매번 성공을 거둘 때마다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 알게 될 것이다. 그대가 성공할 때마다 그 성공은 실패를 자각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돈은 있지만 오히려 가면 갈수록 불만족에 빠진다. 권력은 있지만 더욱더 조바심이 난다. 권력만큼 사람을 권력 없음에 대해 더욱 자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부유함만큼 사람을 내면의 결핍을 더욱 자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서로 반대되는 대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부유하지만 내면에는 가난하고,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바라고 구하고 집착하며, 그것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음을 그대는 알고 있다.
한쪽에서 보면 이것은 불운처럼 보인다. 인간이 지닌 고통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것은 인간의 위대함이다. 인간의 불운이 그의 위대함에는 원천이 된다는 칼라일의 말은 옳다. 이 위대함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위대함은 자신을 능가하고 초월하며, 스스로 자기 삶의 사다리를 만들고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 그런 도약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대는 쓰레기 더미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꽃도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고 말 것이다. 그대는 꽃 한 송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진리에 가까운 어딘가에 도달했을 때에만 그런 꽃들이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탐구이다. 탐구는 신이 되고자 열망하는 인간을 뜻한다. 구도는 진리가 되고 싶은 인간을 뜻한다.
‘나는 진리이다.’
그대는 그것을 몸소 느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그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오쇼의 <운명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