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주를 벗으며 ★
법정은 전국 순회특병강연을 마치고 길상사 회주에서 물러났다.
회주라는 호칭은 불교에서 법회를 주관하는 승려로, 법사를 이르는 말에 불과 했지만 법정은 그 마저도 거추장스럽고
버거웠던 것이다.
법정은 그해 11월 27일 발행된'맑고 향기롭게'의 소식지를 통해 길상사 회주와 '맑고 향기롭게' 회주에서 동시에 물러난다." 고 밝혔다.
그러나
"회주는 그만 두어도 한 사람의 불자와'맑고 향기로운'회원으로 머물며,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를 힘 닿는데 까지
돕겠다."고 말했다.
세상은 이를 두고 법정이 '다시 무소유를 실천했다'고 말했지만 법정은 어느 것도 소유한적이 없기에 그것은 전혀
틀린 말이었다.
회주라는 직책은 그에게 책인이었을 뿐 속세 사람들이 생각하는 '권리'는 애초 없었기 때문이다.
법정은 병이 깊어지고 친지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했다.
다만 늘 말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세상이 반대를 향해 치닫자 아픈 몸을 이끌고 세상을 한바퀴 더 돌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오두막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법정은 자신이 눍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허락된 남은 세월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정신이 번쩍든다.
따라서 내삶을 추하지 않게 마감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혼자서 살아 온 사람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남은 세월이 다할 때까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늙어서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 그 인생이 초라하기 마련이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은 젊음 만이 아니다.
늙어서도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가꾸고 관리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화사한 봄의 꽃도 좋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피는 국화의 향기는 그 어느 꽃보다 귀하다.''
"자기 관리를 위해 내 삶이 새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그대가 잘 알다시피 내 삶의 자취를 돌아보니 나는 말을 너무 많이 한것 같다.
대중앞에서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를 너무 많이 쏟아 놓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침묵의 미덕과 그 의미를 강조 해온 장본인이 침묵보다 말로 살아온 것 같은 모순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법정은 결심을 한다.길상사에서 짝수 달마다 해오던 법회도 내년 부터는봄,가을 두차레만 하가로 결심했다.
물론 절 소임자에도 미리 알려두었다. 어느날 갑자기 이 지상에서 자신의 자취가 사라진다면 가까운 이웃들에게 충격과
서운함이 클 것이므로그 충격과 서운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서히 물러가는 연습을 해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달마다 쓰는 이런 글도 좀 달리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서가를 돌아 보니 그동안 쓴 글들이 번역물을 포함해서 서른 권 가까이 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랐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대견해 했을 일을 법정은 그렇게 고백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해왔듯이 글도 너무 많이 쏟아 놓은 것 같다.
세월의 체에 걸려서 남은 글들이 얼마나 될지 자못 두렵다." 그는 엣글을 떠 올렸다.
'나이 칠십에도 어떤 지위에 있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되었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아서 그 허물이
적지 않다.'
법정은이 구절을 깊이 음미 하고 있었다. 수행의 세계에는 정년이 없지만 직위에는반드시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주'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법정은 '회주 스님'이라는
소릴 들을 때마다 회장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언잖았었다.
법정은 회주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남은 세월 동안에도 나를 낱낱이 지켜 볼 그대에게 내 진실을 쏟아 놓았다. 내 남은 삶을 추하지 않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아 한 말이니 그대로 받아 주기 바란다."
1991년 법정은 송광사의 수련원장직을 버릴 때에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었다.
다만 그의 육신이 너무 나이가 들어 그때처럼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훌 떠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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