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문
번영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파멸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영하고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망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슈라바스티[舍衛城]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祇樹給孤獨園,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용모가 아름다운 한 신이 한밤중이 지나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면서 스승께 가까이 다가왔다.
스승께 예배 드린 후 한쪽에 서서 시로써 호소했다.
"저희는 파멸하는 사람에 대해서고타마(부처님)께 여쭈어보겠습니다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스승께 그것을 묻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스승은 대답하셨다.
"번영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파멸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영하고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망한다."
"잘 알겠습니다옳은 말씀입니다이것이 첫째 파멸입니다
스승님둘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나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착한 사람들을 멀리하며
나쁜 사람이 하는 일을 좋아하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둘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셋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아무때나) 잠자는 버릇이 있고사교의 버릇이 있고분발하여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걸핏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셋째 파멸입니다
스승님넷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늙어 쇠약한 부모는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옳은 말씀입니다이것이 넷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다섯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다른 걸식하는 이를 거짓말로 속인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바라문은 정행淨行, 범지梵志라고도 번역한다.
고대인도 사회에서 제1계급인 바라문교의 사제司祭, 그들은 <베다>성전을 신봉해거기에 규정되어 있
는 제사를 지낸다.
사문은 바라문 이외의 수행승인데, 그들은 <베다>성전을 신봉하지 않았다.
이 바라문과 사문이 그당시 종교계의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주석서에 따르면, 수행자들에게" 무엇이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주십시오."라고 해
필요한 것을 말하게 한 다음, 그것을 주지 않으면 속이는 일이 된다고 했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섯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여섯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엄청나게 많은 재산과 귀금속과먹을 것이 풍족한 사람이
자기 혼자서만 독차지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옳은 말씀입니다이것이 여섯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일곱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혈통을 뽐내고재산과 문벌을 자랑하면서자기의 친척을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여덟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여자에게 미치고 술과 도박에 빠져버는 족족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덟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아홉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남의 아내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홉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한창때를 지난 남자가 틴발 열매처럼 불룩한 젖가슴을 가진
젊은 여인을 유혹하고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 번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한 번째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술과 고기 맛에 빠져 재물을 헤프게 쓰는 여자가 남자에게 집안일의 실권을 맡긴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한 번째 파멸입니다
스승님 열두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크샤트리야[武士]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권세는 작은데 욕망만 커서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세상에는 이와 같은 파멸이 있다는 것을 잘 살펴 현자와 성자들은
진리를 보고 행복한 세계에 이른다."
★강론
분수에 맞는 내 인생의 몫
집을 비우고 열흘 가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오니 녹음이 짙어 있다.
그새 모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작약이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 통나무 의자를 하나 옮겨다 놓았다.
그 위에 걸터앉아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은은한 후박꽃 향기도 좋으려니와
투명한 초록의 나무들이 아주 정답게 느껴진다.
서울과 광주 등지에서 최루탄 때문에 눈물과 곳물과 재채기로 얼룩진 내 숨결이 숲 향기로
이내 다시 맑혀지는 것이다.
5월을 두고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하지만, 이 근래에 와서(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5.16 군사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이후) 이 땅에서는 그런 5월이 사라져버렸다. 정치 권력에 맛들인군인들이 저지른
그 무자비한 살육이 눈부신 5월을 우리한테서 앗아가 버린 것이다.
신록의 향기 대신 최루탄 가스가 전 국토를 더럽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땅에 언제 다시 5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복귀할 것인가.
"크샤트리야(군인)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권세는 작은데 욕망만 커서,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우리 현실에 아주 적절한 교훈이다.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진 군인이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요즘의 유행서를 따른다면 주제 파악을 못하고, 정치 권력을 노려 최고 통치권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파멸의 길이라는 말씀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뒤끝이 바로 이를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개인도 파멸의 문으로 들어갔고, 국가 또한 통치자를 잘못 만나 그만한 피해와 손실을 입은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남의 영역을 침해해가면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도 해치고 이웃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전문직을 익히고 그 길에 한평생 종사하는 것도,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파멸의 장을 읽어보면 한결같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경전의 이름 아래 어째서 이런 범속한 일들이 스승의 교훈으로 다루어졌을까.
상식적이고 당현한 보편적인 이런 생활 규범이 바로 인간의 공통적인 윤리요 도덕이 아니겠는가.
이런 보편적인 생활 규범을 떠난다면 그때는 비 인간의 길, 즉 파멸의 문으로 떨어지고 만다.
상식은 일단 건전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상식에만 매달리려고 하기 때문에 그 틀에서 벗어나라고,
그 집착의 늪에서 뛰쳐 나오라고 눈뜬 사람들은 가르치고 있다.
"술과 고기 맛에 빠져 재물을 헤프게 쓰는 여자나 남자에게 집안일을 실권을 맡긴다면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문득 '성 베테딕도의 수도 규칙'이 떠오른다.
베네딕도는5세기 이탈리아에서 서양 최초의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 수도생활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8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그쪽 수도생활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그의 규칙은 지나친 엄격성을 피하고 분별력과 중용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수도 규칙' 제31장을 보면,
'수도원의 경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도원의 경리는 형제들 중에서 지혜롭고, 성품이 완숙하며, 절제 있고, 많이 먹지 않으며,
자만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욕을 하지않고, 동작이 느리지 않으며, 낭비벽이 없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전체 공동체를 아버지처럼 돌볼 사람이 선정되어야 한다(중략)"
절 소임에 견준다면 재무나 회계 또는 원주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의 재산이나 급식 등 살림살이를 관리 운영하는 사람이 대식가이거나 낭비벽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적합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대식가나 낭비벽이 있는 사람은 자기 몫만이 아니고 남의 몫까지도
가로채서 꿀꺽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돈을 헤프게 쓰는 여자나 남자에게 집안일의 실권을 맡긴다면 그 집안은 언젠가 거덜이 나고 말 거라는
경고다. 지당한 말씀.
자기는 풍족하게 살면서도 늙어 쇠약한 부모를 돌보지 않는 사람, 엄청나게 많은 재산과 물질적인
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웃과 나누어 쓸 줄 모르고 혼자서만 독차지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거라는 교훈이다.
생사 윤회의 원인은 탐욕에 있다고 경전마다 한결같이 말한다.
탐욕이란 더 말할 것도 어이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닫힌 마음이다.
자기 중심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옴짝 못하는 갇힌 마음이다.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산다 할지라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그 마음이 편안할 수없다.
마음이 열려야 열린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음이 틔어야 개체인 내가 전체인 나로 비약할 수 있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이란 원천적으로 내 것일 수 없다.
법계法界의 선물을 그 어떤 인연(경로)으로 말미암아 내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관리인으로서 운영 관리를 제대로 잘한다면 그 관리의 기간이 연장된다. 그러나 그 법계의
선물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착각해 잘못 쓰거나 묵혀둔다면 당장 회수당하고 만다.
이런 도리가 바로 법계의 소식이요, 우주 질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질서가 바로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항상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성인의 가르침을 익히고 배우는 뜻은, 그 가르침을 통해 현재의 내 자신을 읽으라는 소식이다.
교훈의 거울에 발가벗은 자신을 비추어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움직임이다.
경전을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는 것은, 밖으로만 팔리던 눈을 안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다.
안으로 거두어들인 그 눈길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직 활자화 되지 않은 법계의 소식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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