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천한 사람

qhrwk 2022. 2. 5. 08:40

 

 

천한 사람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은 슈라바스티의 제타 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장자長者의 동산에 계셨다.그때 스승께서는 오전에 내의를 입고 바리때와 가사를 걸치고

밥을 빌러 슈라바스티에 들어가셨다.

 

 *장자란 덕을 지닌 부자.

 

그때 불[火]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의 집에는 성화聖火가 켜지고 제물이 올려져있었다.  

스승은 슈라바스티 거리에서 탁발을 하면서 그의 집에 가까이 가셨다.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더니 스승께 소리쳤다.

"까까중아, 거리 있거라.엉터리 사문아, 거리 멈추어라.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신성한 불이 더럽혀질까봐 그는 이와 같이 화를 낸 것이다.

 

이렇게 당한 스승께서는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도대체 당신은어떤 것이 참으로 천한 사람인지 알고나 있소?

아무쪼록 나에게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그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 전까지 이놈 저놈 하면서 서슬이 시퍼렇게 대들던 바라문이.바로 그 자리에서 고분고분

 대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전이나 주석서에는 그럴 만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진혀 없다.

부처님의 위력에 태도를 바꾸었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 자신의 지나친언동을 이내

후회했는지도 모른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후회도 곧잘 하는 법이니까.

 

"바라문이여,그러면 주의해서 잘 들으시오. 내가 말해주겠소."

"네,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대답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화를 잘 내고 원한을 품으며간사하고 악독해서 남의 미덕을 덮어버리고

그릇된 소견으로 음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한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이 세상에 있는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한 번 태어나는 것은 태胎에서 나는 것이고,

두 번 태어나는 것은 알에서 나는 것. 알은 다시 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가 도시를 파괴하고 포위해독재자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에서나 숲에서나남의 것을 주지도 않는데훔치려는 생각으로이를 말없이 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사실은 빚이 있어 돌려 달라고 독촉을 받으면'당신에게 언제 빚진 일이 있느냐'고

발뺌을 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행인을 살해하고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이나 제삼자를 위해또는 재물을 위해

거짓으로 증언[僞證:위증]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때로는 폭력을 가지고또는 서로 눈이 맞아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와 놀아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가진 재물이 풍족하면서도늙고 쇠약한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부모, 형제, 자매또는 계모를때리거나 욕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상대가 이익 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거나숨긴 일을 발설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은밀한 말로 하는 것.또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 제자로 두었으면서도

철저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일부를 남겨 감추어두는 것을 말한다.

나쁜 일을 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숨기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그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는

예의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찾아온 손님을 기꺼이 맞으라는 교훈은 고대 인도에서 널리 강조되었다.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걸식하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바라문이나 사문에게 욕을 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이 세상에서 어리석음에 덮여 변변치 않은 물건을 탐내어 사실이 아닌 일을 말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며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나쁜 욕망이 있어 인색하고덕도 없으면서 존경을 받으려 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깨달은 사람을 비방하고출가나 재가의 사람들을 헐뜯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사실은 성자(아라한)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전 우주의 도둑이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한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천한 사람이오.

 

*비구 250계戒 중에서 네 가지가 가장 엄한 계율인데,이 계를 범하며 대중과 함께 살 수 없다.  

즉 비구의 자격을 박탈, 승단에서 내쫓긴다.  이를 사바라이죄四波羅夷罪라고 한다.

바라이는 산스크리트어 파라지카에서 온 말인데, 극악極惡.단두斷頭.불공주不共住라고도 번역한다.   사실은 깨닫지 못했으면서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면 큰 거짓말[大安言]이 되어 이바라이죄를

 범한 것이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오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불교와 같은 시대에 인도에서 일어났고 교리도 비슷한 데가 많은 자이나교에서도

그 행위에 따라 귀천이 결정된다고 했다.

 

나는 다음에 실례를 들겠으니 이것으로 내 말뜻을 알아 들으시오

찬다라족의 아들이며 개백정 마탕가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있었소.

*찬다라족은 천민의 한 종족, 그들은 주로 도살업에 종사했다.

 

그 마탕가는 얻기 어려운 최고의 명성을 얻었소많은 왕족과 바라문들이 그를 섬기려고 모여들었소.

그는 신들의 길더러운 먼지를 털어버린 청정한 대도大道에 올라가탐욕을 버리고 브라흐만[梵天]의

 세계에 가게 되었소 천한 태생인 그가브라흐만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신들의 길이란<리그 베다>에서는 신들이 천계天界에서 제장祭場에 오고 가는 길,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신들 곁으로 가는 길을 의미했다.   그러나<우파니샤드>에서는브라흐만梵의 지혜를 얻은

 개아個我가 이 육신을 벗어난 뒤 화장의 불꽃과 함께 위로올라가 브라흐만의 세계에 이른다. 

  일단 브라흐만의 세계에 이르면 이제는 이 세상에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이상이고,

 해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교는 이와 같은<우파니샤드>의 사상을 받아들여, 그것을 도덕적, 정신적인 의미로 바꾸어 놓는다.

 원시 불교경전에서는 신들의 길에 해당하는 것을 '브라흐만의 길'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베다> 독송자의 집에 태어나<베다>의 글귀에 친숙한 바라문들도

때로는 나쁜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소.

이와 같이 되면현세에서 비난을 받고 내세에는 나쁜 곳에 태어나오

신분이 높은 태생도 그들이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것을그리고 비난받는 것을 막을수는 없소.

 

*나쁜 곳을 한역漢譯에서는 악취惡趣, 악도惡道로 번역한다.

흔히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하는데, 수라修羅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사뢰었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듯이덮인 것을 벗겨주듯이'눈이 있는 사람들은 빛을 볼 것이다'하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추어주듯이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방편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당신 고타마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교법과 수행승의 모임[僧伽승가]에 귀의합니다.

고타마께서는

오늘부터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를 재속在俗 신자로서 받아주십시오."

 

 

 

★강론

 

인연이란 마음 밭에 씨 뿌리는 일

 

아직도 그런 찌거기는 남아 있지만, 옛날 인도는 계급의 벽이 너무도 두터웠다.

계급 사이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인습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제1계급인 바라문이 길을 가다가 제4계급인 슈드라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집으로 되돌아왔다고한다.

보아서는 안 될 부정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성수로 눈을 씻고 다른 길로 해서 길을 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천한 사람[賤民천민]은, 인도의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은 가장 낮은

계층을 말한다.  

우리의 언어 개념으로 치면 '천한 사람'보다는 '비열한 인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바라문들은 자기네 계급을 신성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탄생의 가설을 꾸며놓았다.

바라문[司祭사제]은 자기네가 가장 신성시한 브라흐만의 입에서 나왔고,

제2계급인 크샤트리야(왕족)는 브라흐만 [梵天범천]의 옆구리에서 나왔으며,

제3계급인 바이샤(일반 서민)는 브라흐만의 오금에서, 그리고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

슈드라(만져서는 안 되는 불가촉 천민)는 브라흐만의 발바닥에서 나왔다고 한 것이다.

 

지금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이야기지만, 고대 인도 사회에서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허무맹랑한 가설이 그 사회의 규범을 지배했다.

이런 토양에서, 바라문이 되는 것은 출새이나 가문에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 부처님의 주장은, 그 당시로 보면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양반과 쌍놈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양식에 따라 귀한 사람도 되고 천한 사람도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 당시 부처님의 출가 제자들을 출신 성분별로 보면(주로 아함부 경전에 나온 자료)

바라문 출신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왕족, 서민의 순서다.   부처님에게서 계행을

지키는 데 으뜸[持戒第一지계제일]이라고 칭찬받던 우팔리優婆離는 출가 전 석가족의

이발사였다.   이발사는 그 당시 천민에 속했다.  

그런데 이 천민 출신인 우팔리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교단의 생활 규범인 <율장律藏>을

편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처님은 <증일아함경> 권21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강가, 신두, 박슈, 시타 등 4대 강의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본래의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바다'로

 불린다.이와 마찬가지로 바라문, 크샤트리야, 바이샤, 슈드라 등 4종성種姓에 속하는 사람들이

 부처님께 출가해그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면, 다만 '사문 석자 釋子'라고 불린다."

 

초기 경전에는 '바라드바자'라는 동명 이 인의 이름이 더러 나온다.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도

 있다.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부처님께 욕을 한 인연으로 결국 부처님의 재가 제자가 된다.

인연이란 마음 밭에 씨 뿌리는 것과 같아서 그 씨앗에서 새로운 움이 트고 잎이 펼쳐진다.

인연이란 이렇듯 미묘한 끄나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