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름다움

화룔사2.

qhrwk 2022. 11. 17. 09:08

회룡사 극락보전 편액
회룡사 극락보전 주련 世自在王 如來世時 有一比丘名曰法藏 偏憐忍界難化衆生 修六八願創設具行 因以成佛厥號彌陀 現捿蓮邦接引不休   세자재왕이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 한비구가 있었으니 이름이 법장이었다. 사바세계의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매우 불쌍히 여겨서 48원을 새로이 세워 원만히 구족한 법을 닦으시니 이를 인하여 성불하여 그 호를 미타라 하였으니 현재는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중생을 쉬지 않고 재접하신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의하면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과거 세자재왕여래

(世自在王如來)가 출현하셨던 세상에 한 사람의 국왕(國王)이 있었는데

여래의 설법을 듣고 기쁨의 마음을 일으켜서 곧 대보리심[無上正眞道意]을

일으켜서 나라와 왕위도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사문(沙門)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비구가 된 후 이름을 법장(法藏)이라 했습니다. 그는 재주와 지혜

가 뛰어난 용감한 사람으로 세간의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세자재왕여래 앞에서 48 원(願)을 세우고 맹세하기를 "이 서원이 성취되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 는 서원(誓願)을 세우자 이에 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하늘로부터 연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서로운 서응이

있었으며 반드시 깨달음을 증득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으셨습니다.

 

법장비구는 48 원을 이루기 위해 보살의 육바라밀행을 닦고 한없는 긴 세월

동안 수행을 쌓고 많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아 올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법장 보살은 지금으로부터 십겁(十劫) 전에 성불(成佛)하시어

극락세계(極樂世界)를 건설하시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셨는데

극락세계는 서방(西方)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있다고 합니다.

 

아미타불이란 무량한 광명[無量光], 무량한 수명[無量壽]을 가진 부처님이란

뜻입니다. 48 원을 세워 이룬 정토(淨土)이기 때문에 일심으로 염불하고

선근공덕을 짓고 도업을 행한다면 아미타불의 내영(來迎)을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회룡사 극락보전 부처님 우보처 지장보살 본존 아미타불 좌보처 관세음보살

화려하게 치장된 불단의 주존은 아미타불좌상이며 좌우에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화좌에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 아미타불은 수명장수하고

극락왕생을 보장하며 자비를 베푸는 분입니다.

오른쪽에 두건을 쓰고 육환장(六環杖)을 잡고 앉아있는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입니다.

왼쪽에서 협시를 이루는 관음보살은 보관에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고

손에는 연꽃가지를 쥐고 앉아 있는데, 이 보살은 자비의 화신(化身)이라고 합니다.

뒤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후불탱이 걸려 있으며,

위에는 용머리와 연꽃봉우리가 조각된 닫집이 가설되어 있습니다.

회룡사 극락보전 신중단
회룡사 극락보전 벽화
회룡사 대웅전벽화 십우도

一. 尋牛(심우)

1. 첫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버린 것이다.

 

二. 見跡(견적)

 

2. 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 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三. 見牛(견우)

3. 세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각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四. 得牛(득우)

4. 네 번째는 득우(得牛), 즉 '소를 얻다' 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五. 牧牛(목우)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서,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나 아직 이 마음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六. 騎牛歸家(기우귀가)

6.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七. 忘牛存人(망우존인)

7.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존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八. 人牛具忘(인우구망)

 

8.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九. 返本還源(반본환원)

9.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十. 入廛垂手(입전수수)

10.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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