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름다움

경국사 (慶國寺) 1.

qhrwk 2022. 11. 17. 09:21

위 치 : 서울시 성북구 정릉3동 753

전화번호 : 02-914-5447

경국사는 북한산 동쪽에 자리한 고려시대의 사찰이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다.

이 사찰은 옛부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경국사 일주문 편액

일주문의 입구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사찰의 이름인 '삼각산경국사(三角山慶國寺)'라고 씌어 있다.

 

정릉천을 끼고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경국사는 1325년(고려 충숙왕 12)

자정국존(慈淨國尊)이 창건한 청암사(靑巖寺)가 그 시초이다.

그 후 1669년(현종 10) 조선태조의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 묘소인 정릉이 복원이 되면서

근처에 있던 약사사(봉국사), 흥천사와 함께 능묘의 원찰로 지정되어 경국사로 절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후 많은 스님들이 머물면서 가람수호와 수행에 진력해 왔는데,

특히 보경 보현(寶鏡普現)스님으로 인해 경국사는 현대사에 있어 크게 부각이 되었다.

보경스님은 1921년 주지가 된 후 60년간을 절에서 떠나지 않았고, 단청(丹靑)과 불화 조성에 일가를 이루었던 분이다.

현재 경국사의 영산전과 명부전, 삼성보전 등의 전각에는 보경스님이 직접 그리고

조성한 불화와 불상이 많이 남아있다.

또한 전등사와 낙산사, 삼막사, 연주암, 보신각, 경회루 등에도 스님의 손길은 거쳐갔다.

또 스님은 근대기 경국사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교학과 선지(禪智)를 두루 익히고 계율에도 철저하여 승가의 귀감이 되기도 하셨다.

경국사 일주문

불법의 세계를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문이다.

정사각형의 지대석이 귀꽃장식이 된 초석을 받치고 용이 승천하고 있는 모습의 돌기둥을 세워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올린 일주문은 화려하게 장엄되어 있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대통령이 절에 들렀다가 보경스님의 인격에 감화되어 몇 차례나 찾아왔고,

참다운 승가의 모범이 이곳에 있다고까지 칭송했다한다.

그래서인지 1953년에는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였을 때도

한국문화의 참모습이 이곳에 있다고 하여 그를 절에 안내하기도 했다.

후일 닉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경국사에서 참배했던 경험이 한국방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학승(學僧)이면서, 32대 조계종총무원장이신 지관(智冠)스님이

1979년부터 주석하시면서 활발한 포교활동과 절의 내실을 다지기도 했다.

현재 경국사의 모습은 지관스님의 노력에 힘입어 이룩된 것으로 예전에 비해 한층 더 빛을 내고 있다.

이렇듯 경국사는 자정국존의 창건 이래 엄격한 계율을 지켜온 고승대덕의 수행지였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청정한 승가의 참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만인에게 두고두고 기억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관람포인트]

1. 극락보전에는 보물 제748호로 지정된 아미타후불목각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목각탱은 얼마 되지 않는 조선 후기 목각탱 가운데 하나이다.

2. 영산전이나 명부전 등에는 근현대기의 화원이자 경국사 주지를 지냈던

보경스님의 혼이 담긴 불화와 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3. 명부전에는 11세기경 중국 요(遼)나라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경국사 일주문 기둥 용조각
경국사 전경
경국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목각탱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각탱으로 조성년대는 18세기 중엽으로 추정이 된다.

구도를 보면 중앙의 아미타불이 커다란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높은 양련 대좌(仰蓮臺座) 위에 앉아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나발이 붙여 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하고,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서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광배는 크고 화려한 불꽃무늬가 위로 솟아서 뻗쳐있고 그 안에 3위의 화불들이 각각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는 관음과 대세지보살 등 8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 좌우에는 사천왕 중 증장천과 지국천이 조각되어 있고,

상단에는 사천왕이 들어갈 자리에 ‘서방광목천왕’ ‘북방비사문천왕’이라 쓴 패(牌)만 조각되어 있다.

8대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두꺼운 옷을 입고 연꽃을 든 채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다.

본존과 같은 높이에 보살이 서 있고 바깥 좌우에는 나한상이 1구씩 서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양감이 결여되어 형식화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후기 목각탱 가운

데 귀중한 자료로 현재 보물 제748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보)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서방극락 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주불전이다.
아미타여래는 수명장수하고 극락왕생을 보장하여 자비를 베푸는 분으로
극락이나 무량이라 말은『미타3부경』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경국사 극락보전 닫집

전각 속의 또 하나의 전각인 닫집을 3층으로 올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청룡과 황룡,

하늘에는 백학이 날아다니며 서로 다투는 듯한 쌍룡이 몸을 비틀어 수호하고

연꽃봉우리가 조각되어 있는 것에서 극락세계를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안에는 3층의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는데 극락조와 공작, 백학이 하늘을 날고,

여의주를 입에 문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어 마치 극락세계의 한 장면인 듯하다.

이 닫집 아래에는 목조아미타삼존과 그 뒤에 보물 제748호로 지정된 아미타후불목각탱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과 1887년(고종 24) 조성한 신중탱을,

왼쪽 벽면에는 지장보살좌상과 근래에 조각한 아미타후불목각탱을 봉안하였다.

이외에도 근래에 조성한 범종이 하나 봉안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1989년에 증축하고 새롭게 단청을 하였다.

건물은 높다란 석조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원형의 초석과 기둥을 세웠으며,

어칸의 기둥위에는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부재인 안초공을 끼웠는데

바깥에는 용머리를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조각하였다.

그리고 포벽에는 여래상을 그렸으며, 건물의 외벽에는 돌아가면서

다양한 모습과 자세를 한 오백나한을 그려 장엄하였다.

현재 건물은 내부 공간이 협소하여 앞쪽에 덧대어 예배공간을 넓혀 사용하고 있다.

 

1914년에 기송석찰(其松錫찰)스님이 극락보전을 다시 세우고 보경(寶慶)스님이 1921년에 단청을 하였는데

지관스님이 머물면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고쳐 지었다.

근래에 단청을 새롭게 입혀 아미타여래의 보궁을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안에는 아미타삼존상과 보물인 목각후불탱, 1887년(고종24)에 봉안된 신중탱, 최근에 조성된 목각탱이 모셔져 있다.

 

서울 정릉 경국사 목각탱(慶國寺木刻幀) 보물 제748호

서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목각탱으로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모두 13구의 불상과 보살이 있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커다란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대좌(臺座) 위에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 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하고,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서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아래위의 너비가 같은 조선시대 특유의 형식이다.

불꽃무늬가 위로 솟아서 뻗쳐있고 그 안에 작은 부처들이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 아미타 8대보살이 있고, 그 밑 좌우에 사천왕 중 증장천과 지국천이 있다.

8대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두꺼운 옷을 입고 연꽃을 든 채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다.

본존과 같은 높이에 보살이 서 있고 바깥 좌우에는 나한상이 1구씩 서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양감이 결여되어, 형식화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 가운데 하나로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각의 불상 뒷편에 그린 그림을 후불탱화라고 합니다.

각 부처님의 간단한 특징 만을 나타낸 불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도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라고 하는데 이는 영취산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대중들을 상대로
법화경을 설하시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뒷편 탱화는 극락회상도라고 하며,
약사여래불 뒷편의 탱화는 약사회상도 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아주 특별한 탱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후불탱화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목각탱화로 모시는 것이지요.
지금도 목각으로 해서 모시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생각한다면
조선시대에 감히 목각탱화를 모실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웠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경국사 극락보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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