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들어가라
화가 나면 그대는 뭔가를 한다.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이 그대에게 쾌감을 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엄청난 쾌감, 힘, 권능의 느낌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분노가 사라지고 나면, 그대는 후회와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대는 그것이 좋지 않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며 이제 그것은 고통이 된다.
분노가 일어날 땐 강력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이제 열기가 식은 상태에서 그대는 다시 본다.
그대는 이제 냉정하게 정신을 차린 상태이다.
이제 그것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어떤 한 가지가 쾌락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동일한 것이 그대에겐 쾌락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된다.
쾌락과 고통은 함께 간다.
나는 이렇게 제안하는 바이다.
고통이 있을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 안으로 깊게 들어가라.
열린 자세로 그것을 받아들여라. 최대한 예민하게 받아들여라.
고통의 화살이 그대를 뚫고 그대의 중심으로 파고들게 하라.
그것을 생생하게 겪어라.
그리고 쾌락이 오면, 그것도 그대의 핵심에 도달하게 하라.
그것에 맞춰 춤을 춰라.
고통이 있을 땐 고통과 함께 하고, 쾌락이 있을 땐 쾌락과 함께 하라.
고통과 쾌락이 찾아오는 매순간이 위대한 모험이 되도록 최대한 예민하게 받아들여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대는 고통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리라.
그것은 쾌락만큼이나 아름답다.
고통 역시 그대의 존재를 예리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대의 존재에 자각을 일깨워준다.
때로는 쾌락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쾌락은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나태함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깊이가 얕은 것이다.
그들에게서 어떠한 깊이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오직 표면적인 삶, 이런 쾌락에서 저런 쾌락으로 이어지는 삶만을 살아왔다.
플레이보이들은 고통이 뭔지를 모른다.
고통은 주의 깊게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연민과 감성을 키워준다.
고통은 그대를 크고 깊게 만들어준다.
가슴은 고통으로 인해서 성장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기만의 미덕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통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단지 고통이 있을 때, 그것마저도 즐기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존재계의 선물이며, 그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
고통을 거부하지 말고 그것도 즐겨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맞이하고 그것과 함께 하라.
처음에는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대는 그 맛을 알게 될 것이다.
- 오쇼의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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