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는 없다
동양에서는 자신이 죽기 전에 미리 그때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 발달해왔다.
그런데 왜 그것을 걱정하는가?
그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 핵심은 무엇인가?
서양의 심리학자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그것을 일종의 정신병적인 현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왜 죽음에 대해 걱정하는가?
죽음을 회피하라.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죽음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계속 믿어라.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대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겠지만,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는가?
그대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외는 아무도 없다.
죽음은 이미 그대가 태어났을 때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탄생은 그대의 능력 밖의 일이다.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
탄생은 이미 일어난 과거지사가 되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죽음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떻게 해볼 여지가 있다.
동양의 모든 종교는 죽음에 대한 비전에 의존한다.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미리 그것을 안다면, 많은 것이 가능해진다.
수많은 문이 열린다.
그러면 그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죽을 수 있다.
자신이 죽으면 자기만의 표식을 남기고 죽을 수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뭔가를 준비해둘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준비의 의미이다.
그것은 병적이지 않으며 매우 과학적이다.
모두가 죽을 때가 되어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죽음을 명상하지 않고 그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다.
죽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그대가 그것을 진정으로 안다면, 많은 것이 가능해진다.
요가의 창시자인 파탄잘리는 죽음이 일어날 때를 날짜, 시간, 분, 초까지 정확히 말한다.
죽음이 언제 일어날지를 안다면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큰 손님처럼 맞이해야 한다.
죽음은 그대의 적이 아니다.
사실 죽음은 신이 준 소중한 선물이다.
죽음은 누구나 기꺼이 통과해야 할 멋진 기회이다.
죽음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주의가 깊어지고 깨어있는 자각의 상태로 죽을 수 있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의 죽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그 기회를 놓치면, 죽음이 전하는 교훈을 배울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매우 강렬한 것이어서 죽음의 순간이 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무의식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들은 죽음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죽음이 오는 순간에 너무나 걱정되고 두려워서 그것을 피하느라 무의식에 빠진다.
거의 99퍼센트의 사람들은 무의식에 빠진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그들은 기회를 놓친다.
죽음을 미리 알게 되면, 죽음이 왔을 때 완전하게 주의와 자각을 기울여서 죽음과
함께 따라가고 죽음의 품에 안기고 죽음에 복종하도록 준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깨어있는 자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더 이상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다.
그대는 그 가르침을 배운 것이다.
-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