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의 향훈

허공 꽃(幻華) /장졸수재(張拙秀才)

qhrwk 2023. 10. 6. 20:06

우학 스님

 

♣허공 꽃(幻華) /장졸수재(張拙秀才) ♣

 

지혜광명이 온 세계를 고요히 비추니 범부와 성인 등 모든 생명이 다 나의 가족,한 생각도

일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고 육근(六根)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리네.

 

번뇌를 끊으려 하면 되레 병만 많아지고 진여(眞如)를 구하는 것 또한 삿된 짓이로다.

세상 인연에 따르되 걸리는 것이 없으면 열반과 생사라는 것도 허공꽃과 같으리.

장졸수재(張拙秀才)는 유학자였다. 선월(禪月)의 소개로 석상경제(石霜慶諸)선사에게

참(參)했다.

그때 석상스님은 수재에게

‘그대의 성은 무엇인고?’ 라고 물었는데 수재는‘성은 장이고 이름은 졸(拙)입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석상스님은 ‘교(巧)를 구함도 가히 얻을 수 없는데, 졸(拙)이 어떻게 나왔는고?’라고

다시 말하였다. 이에 장졸수재가

깨달은 바 있어 말 그대로 수재답게 위 게송을 즉석에서 지어 스님에게 바쳤다.

이 시는 다분히 자연주의적이다. 전미개오(轉迷開悟), 혁범성성 (革凡成聖)의 말들도 구차하다.

생긴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이미 한 경계를 넘어선 정신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담박하고 담백한 맛이 배어 있다.

 

무문관 39칙 운문화타(雲門話墮)

 

 

1본칙

운문큰스님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게송 한 구절을 읊었다.
“지혜광명이 온 세계를 고요히 비추니….”
첫 구절이 끝나기도 전에 운문큰스님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것은 장졸수재의 말이지 않는가?”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큰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말에 떨어졌다.”

 

뒷날 사심(死心) 선사가 이 이야기를 집어서 말했다.
“자, 말해보라. 그 스님이 말에 떨어진 곳이 어디인가?”

 

2 <평창-송>
 만약 여기에서 운문의 용처(用處)가 고위(孤危)한 것과무슨 말로 인하여 말에 떨어진 줄을

더불어 깨달아 알면 감히 인천(人天)의 스승이 될 만 하거니와 만약 밝히지 못 한다면 자기 자신도

구제하기 어려우니라.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급류에 낚시를 드리웠더니/ 먹이를 탐하는 놈이 물었구나.
입을 조금만 달싹거려도/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아무튼, 이 게송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운문큰스님은 시를 듣자마자
‘그것은 장졸수재의 말이지 않는가’ 하고 꼭 집었던 것이다.

운문큰스님 앞에 나타난 그 스님은 실력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상(相)도 좀 낼 겸 큰스님 앞에서 깝죽 거리다가 첫 구절에서 쥐어박히고 말았다.  

남의 시를 가지고 와서 들먹 거렸으니 ‘무간 아비지옥에서 벗어날 지혜가 그 시에 들어 있는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하는 메시지이다.


 스스로 깨달아서 스스로의 시를 지을 일이지 다른 이의 깨달음을 끌고와 말장난을 하자고

하니 말이 될 법한 소리인가.

선(禪)에 있어서 모방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전혀 새로운 말 즉, 자기 고함 소리를 지를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제불조사(諸佛祖師)의 말이라도 거기에 매달리면그 순간 말에 떨어지고 만다.

 

말을 희롱하며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지 못하고 말의 노예가 되어서는 주인공적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시비와 분별이 모두 남이 한 말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극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우학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