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무문관]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 - 인과에 매하지 않는다

qhrwk 2023. 12. 15. 07:53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 - 인과에 매하지 않는다

백장회해선사가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와서 늘 대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가면 함께 물러가곤 하였다. 문득 어느 날은 물러가지 않았다.

스님께서 마침내 물었다.
“앞에 서 있는 자는 어찌된 사람이냐?”

노인이 대답했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불 당시에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그 때 어느 학인이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제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 화상께서 대신하여 한 말씀으로 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는 노인이 물었다.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백장 선사가 대답하였다.
“인과에 매(昧)하지 않느니라.”

노인이 그 말에 크게 깨달아 인사하며 말하였다.
“제가 이미 벗어버린 여우의 몸이 뒷산에 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죽은 스님에게 하듯 장례를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백장 선사가 유나를 시켜 '식후에 죽은 스님의 장례가 있다'고 대중에게 고하게 하니 

'모두 평안하여 열반당에 한 사람의 병자도 없었는데 어째서 죽은 스님의 장례가 

있다고 하는가?'하고 대중이 수군대었다. 

식후 백장 선사가 대중을 데리고 뒷산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여우를 

끄집어내어 화장을 하였다.

백장 선사가 저녁에 법당에 나와 앞의 인연을 이야기하였다.
이 때 황벽이 일어나서 말하였다.
"고인(古人)이 잘못 대답하여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는데 만약 잘못 대답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백장선사가 말하였다.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대를 위해 가르쳐 주리라.”

황벽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백장 선사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백장 선사가 박수를 치고 웃으시며 말하였다.
“과연 그렇구나. 오랑캐의 수염은 붉다더니 붉은 수염 오랑캐가 있구나.”

[평창(評唱)]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여우 몸이 되었으며 인과에 혼미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여우 몸을 벗어났을까? 

만약 여기에 대해 외눈을 얻었다면 문득 백장 앞 그 노인의 오백생 여우 생활이 도리어

 풍류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게송(偈頌)으로 말하길,

떨어지지 않고 혼미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굴려봐도 하나의 주사위
혼미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
천 번 그르치고 만 번 그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