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우학스님의 무문관] 문 없는 문을 법문으로 삼다

qhrwk 2023. 12. 30. 08:02

 

무문혜개(無門慧開)스님의 서문
 

48칙 공안 속엔 화두참구법과
정법 안목 여는 자비방편 가득
 선종의 문이 없는 관문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마음을 으뜸으로 삼고 문 없는 문을 법문으로 삼는다. 

그러니 이에 문이 없다면, 어떻게 뚫고 나가겠는가?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집안의 보배가 될 수 없고 인연을 따라 얻은 것은 

시작과 끝이 있어, 이루어지면 무너진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며, 멀쩡한 살을 

찔러서 상처를 내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찌 언어나 문자에 매달려 알음알이로 구하겠는가?
 
본인, 혜개(慧開)가 소정 무자년(1228년) 여름, 동가에 있는 용상사에서 대중들의 

수좌로 있을 때, 법을 물어오는 납자들의 청에 따라 옛사람들의 공안을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으로 삼아 각자 근기에 따라 공부하는 이들을 인도했다. 

마침내 간추려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이 되었다. 

모아보니 48칙이 되었다. 

이것을 통틀어 무문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칼 한자루 들고 뛰어든다면, 팔이 여덟개나 

되는 신장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며, 설령 서천의 스물여덟 조사와 동토의 

여섯 조사라도 그 위풍을 바라보며 그저 목숨을 구걸할 것이다. 

게송으로 읊노니

 ‘대도에는 문이 없도다./ 

천갈래 길은 있으니/ 이 관문을 뚫고 나아가면/ 

온 천지 당당히 활보하리라.’
 
설명
 
무문관(無門關)은 선가(禪家)에서 간화선의 기본 텍스트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벽암록>, <종용록> 등의 선서(禪書)가 이미 편찬되어 있었지만 

간화선의 종지를 결론적으로 더욱 굳건히 제시한 공안집은 무문혜개스님의 이 무문관이다.

무문관에서 제시한 48칙의 공안마다 화두참구하는 방법과 정법의 안목을 열어주는 

자비방편이 가득하다.

무문혜개(1183~1260)스님은 출가 후 월림사관(月林師觀)선사의 문하에 들어가 

조주스님의 무자(無字)화두와 씨름하였다. 

6년이 지난 어느날 점심공양을 알리는 북소리를 듣고 불법의 대의를 깨달았다. 

스님의 오도송이다.
 
“맑은 날에 한소리 큰우뢰/ 대지의 중생들 눈 활짝 열었도다/ 

삼라만상이 한결같이 머리 조아리니/ 수미산을 뛰어넘어 덩실덩실 춤추도다.”
 
스님은 월림사관 선사로부터 법을 계승한 이후 세상에 나와 중생을 구제하였다. 

보인사를 비롯해 여러 사찰의 주지직을 역임하였으니 이(理).사(事)를 종횡무진하는 

대선지식의 행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록에 의하면 스님은 자기가 들어갈 탑을 만들고 곧바로 열반에 들었다. 

스님의 임종게이다.
 
“허공은 남도 없고/ 허공은 멸함도 없는 것/ 이러한 허공의 경지를 증득하면/ 허공과 다름 없으리.”
무문혜개 스님은 자신의 화두였던 무(無)에 대한 확신을 특이한 게송으로 읊기도 하였다.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현재 ‘무문관’이란 특수선방도 ‘무문관’ 책으로부터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본다면 

스님의 법력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