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우학스님의 무문관] ‘인과법’과 ‘해탈’의 절묘한 조화 - 제2칙 백장스님과 여우 이야기

qhrwk 2023. 12. 31. 11:49

 

(가) 본칙(本則)
 
백장 큰스님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대중과 함께 법문을 들었다. 

그는 대중이 물러가면 같이 물러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물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큰스님이 그 노인에게 물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대는 누구시오?”
 
노인이 대답하였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불 시대에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당시 어떤 학인이‘훌륭한 수행자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하고 

묻기에 저는‘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백생 동안이나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큰스님께 간청하오니 저를 대신하여 딱 옳은 한말씀을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여우의 몸을 벗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그는 여쭈었다. 

“훌륭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에 큰스님은 대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
 
노인은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크게 깨달았다. 

그는 곧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저는 이제 여우의 몸을 벗게 되었습니다. 저의 껍데기는 뒷산에 남길 것입니다. 큰스님께 

말씀드리기 죄송하오나 저를 돌아가신 스님들 장례 치르는 방식으로 해주십시오.”
 
이에 큰스님이 유나 스님을 시켜 추를 쳐 대중을 모이게 한 뒤 ‘공양 후에 어떤 돌아가신 

스님의 장례가 있다’고 일렀다. 대중 스님들은 서로 ‘온 대중들은 모두 건강하고 열반당에도

 아픈 스님이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저런 말씀을 하실까’하며 수군댔다. 

 

공양이 끝나자 큰스님은 대중을 이끌고 뒷산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여우 

한마리를 끄집어 내었다. 

그리고 스님 장례하듯 다비해 주었다. 큰스님은 그날 저녁 법상에 올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이때 황벽스님이 여쭈었다

.“그 노인은 한마디 대답을 잘못하여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한마디 어긋나지 않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자 큰스님께서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일러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황벽스님이 가까이 다가가더니 손바닥을 한번‘탁’쳐 보였다.
 
그러자 백장 큰스님은 박수를 치며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달마의 수염은 붉다고 말하려 했더니 여기에 또 붉은수염의 달마가 있구나.”
 
반야와 무명이 한 공간이듯 깨달음과 미혹 또한 한뿌리
 
(나) 평창(評唱)및 송(頌)
 
무문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어찌하여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는가?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는 말은 어찌하여 여우의 몸을 벗게 하였는가? 

만약 이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갖춘 자라면, 백장 큰스님 앞의 그 노인이 

오백생 동안 풍류를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불락(不落)과 불매(不昧)여

두가지가 한바탕이네.

불락(不落)과 불매(不昧)여

천만번 틀렸도다.
 
(다) 설명
 
인과법과 해탈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상황 전개이다. 

각자(覺者)에게는 불락(不落)이 들어맞지만 깨닫지 못하였으니 불매(不昧)라도 과분하다. 

반야와 무명이 한 공간이듯 깨달음과 미혹 또한 한 뿌리이다.
부처가 곧 중생이라지만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따라 십만팔천리 거리가 생긴다. 

선화(禪話)는 논리를 초월할 뿐 비논리적이지는 않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