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본칙(本則)
구지 큰스님은 언제나 누구의 질문을 받으면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세워 보였다.
어느 날 그 절 방문객이 “너희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법을 설하시는가?”하고 묻자,
동자 역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 큰스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동자의 그 손가락을 날카로운 칼로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못 이겨 울부짖으며 달아났다.
구지 큰스님이 다시 동자를 불렀다.
동자가 고개를 돌리자 큰스님은 바로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동자는 홀연히 깨달았다.
구지 큰스님은 임종에 이르러 대중들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天龍)선사로부터 일지두선(一指頭禪)을 배운 뒤, 일생동안 써먹었지만 다 쓰질
못하였다.” 그러고는 곧 입적했다.
꽃 한송이로 우주를 설명하듯
삼라만상 진리를 손으로 법문
(나) 평창(評唱) 및 송(頌) 무문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구지 큰스님과 동자가 그 깨달은 곳이 손가락 끝에 있지 않다.
만약 이것을 안다면 천룡선사와 구지 큰스님과 동자, 그리고 자기 자신도 한 꼬챙이에
꿰는 것이 된다.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구지 큰스님은 천룡 노선사를 적당히 얕보고
날카로운 칼로 동자를 시험하였네.
거령신이 별 조작도 안하고 손을 들어
천만 겹의 화산을 쪼개 버렸듯이.
(다) 설명
구지 큰스님이 작은 암자에 살고 있을 때에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찾아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스님의 선상을 세 바퀴나 돌고는 석장을 우뚝 스님 앞에 세우고
서서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저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스님께서 대답을 하지 못하니 비구니는 그냥 떠나려고 하였다.
이에 스님은 말씀하셨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비구니가 다시 말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하지 못하시면 이대로 떠나겠습니다”
하고는 잠시 후 가버렸다.
이에 스님은 혼자 탄식하였다.
“나는 명색이 사문이라고 하면서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을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사색에 드니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보름 안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해 드릴 것이오.”
그런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 천룡 노선사가 왔거늘 스님은 뛰어나가 발에 절을 하고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오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한 즉 천룡 노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보이니
당장에 활짝 깨달았다.
그 뒤 구지 큰스님 또한 스승 천룡 노선사처럼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일지선(一指禪)으로
수좌들을 제접하였다.
이상은 <조당집(祖堂集)>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삼라만상의 근원자리는 청정하고 본연(本然)하다.
그리하여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또한 작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곡식 한 알, 꽃 한 송이에 온 우주가 들어가 있듯이 한 손가락 속에 만고의 진리가 갖추어져 있다.
한마디로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다. 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연꽃이나 불자(拂子)를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작위(作爲)를 쓰지 않고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행해진다면 그 어떤 수작도 기연(機緣)이 된다.
그렇지만 언어문자나 행위를 흉내 내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모방이나 가식의 허물은 칼로써 손가락이 잘리는 수모도 부족하다.
실참실오(實參實悟)만이 살길이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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