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본칙(本則)
향엄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문 채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잡지 않고, 발로도 나뭇가지를 딛지 않고 있었다. 그
때 나무 아래서 어떤 사람이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질문을 피하는 것이 될 것이고, 대답하면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이와 같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무 오르기 이전 묻지 않는 초 상좌 대꾸 기발…“허허”
(나) 평창(評唱) 및 송(頌)
무문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설령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한 달변이라도 다 소용없다.
또 대장경의 가르침을 모두 설할 수 있어도 역시 소용없다.
만일 여기서 딱 알맞게 대응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죽어있던 것을 살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던 것을 죽일 수도 있다.
혹시 그게 잘 안된다면 그대로 먼 훗날을 기다렸다가 미륵부처님에게나
물어보아야 하리라.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향엄 큰스님은 참으로 황당무게한 사람.
그가 퍼붓는 독설은 끝이 없다네
납승의 입을 벙어리로 만들어 놓고
온몸으로 신통의 눈을 뜨도록 하네.’
(다) 설명
입을 열어도 낭패고, 입을 다물고 있어도 낭패다.
입 열음(開口)와 입 닫음(閉口)사이의 틈새를 공략해야 살길이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부귀영화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탐낼 일도, 성낼 일도 깡그리 없어졌다.
입을 열어도 그르치고 입을 닫아도 그르치니 어느 한쪽을 택한다면 그것은 망심(妄心)에
기인한 분별(分別)이다.
양비(兩非) 즉, 둘 다 아니다.
선택을 용납지 않는다.
불개불폐(不開不閉)의 중도(中道)의 자리라야 무분별지(無分別智)가 된다.
무분별지에서는 죽음과 삶이 함께하고 순간과 영원이 함께한다.
용과 이무기가 뒤섞여도 관계없고, 중생과 부처가 같이 놀아도 간섭하지 않는다.
화두가 제대로 잡히면 무의식(無意識)너머의 소식 즉, 무분별지의 땅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이 진정 살 길이다.
발도 떼고 손도 놓은 상태에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물었다는 것은 입은 아예 닫고
대답하라는 뜻이다.
이쯤 되면 일체의 언어 문자는 소용없게 되었다.
사구(四句)와 백비(白非)를 죄다 끊어버린 상태라야 한다.
만일, 백번 양보하여 나뭇가지를 물지 않고 멀쩡한 상태에서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하고 묻는 말에 대답할 인물이라면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이러한 급박한 상황을 무난히 타개할 수 있는 유력인(有力人)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궁지에 처했을 때 어리석은 자는 포기해서 나락에 떨어지고
지혜 있는 자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간다.
향엄 큰스님이 대중에게 본칙(本則)의 화두를 던졌을 때 초(招) 상좌가 여쭈었다.
“나무 위에 오른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나무에 오르기 이전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큰스님은 ‘허허’하고 웃으시며 게송을 읊으셨다.(게송생략)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일어나기 이전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결방법이다.
온갖 망상으로 비롯된 병마를 치료한다는 것은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초(招 )상좌의 대꾸가 기발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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