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식 이전 ‘만고불역’ 진리의 표상
제6칙 부처님, 꽃을 들다
(가) 본칙(本則)
옛날,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 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그때 모든 대중은 다 침묵한 채 아무 말이 없었는데, 오직 가섭존자만이 얼굴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띄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열반의 묘한 마음이며, 참모습이되 모습이 없다.
미묘한 법문이라 문자를 세우지 않고 따로 전하려 한다.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정법안장 부촉…삼처전심의 하나
격외의 몸짓에 ‘줄탁동시’로 계합
(나) 평창(評唱) 및 송(頌)
누런 얼굴을 한 붓다가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양민을 억지로 노예로 만드는가 하면,
양의 대가리를 내걸어 놓고 개고기를 팔고 있다. 다소 기특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에 대중모두가 빙그레 웃었다면 정법안장은 어떻게 전수되었을까.
만일 가섭이 웃지 않았다면 정법안장은 또 어떻게 전수되었을까.
만약 정법안장이란 것이 전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황면노자(黃面老子)가 촌사람들을
속인 것이 되고, 또 만약 전수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가섭 한
사람에게만큼은 허락하였을까.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꽃을 들어 올렸을 때
이미 꼬리가 드러났다.
가섭은 빙그레 웃었으나
인간과 천인은 어쩔 줄 몰라 하네.
(다) 설명
정법의 안목을 갖춘 제자를 인가하는 성스러운 정법안장의 부촉현장을 본다.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의 하나이다.
삼처전심이라하면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인데 특히 여기서 소개되는‘세존염화’의
전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영축산에 법단을 마련하고 8만4천 대중을 모이게 하였다. 세존께서 단에
오르기 직전 대범천왕이 금파라(金波羅)라는 꽃가지 하나를 부처님께 올렸다.
대중들은 세존의 설법을 기대하며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인데 세존께서는
금파라를 들고 법단에 오르자마자 그 꽃가지를 번쩍 들어 대중에게 보일뿐 일언반구
한 말씀도 없으셨다.
이때 대중들은 그것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가섭존자만이 의미를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었다.
그때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 가섭 한 사람만이 나의 뜻을 알았도다’하시며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미묘한 법문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셨다.”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시는 격외(格外)의 몸짓으로 무분별한 본래의 자리를 보이셨다.
가섭은 이에 딱 맞게 줄탁동시(啄同時)로 계합한 것이다.
여기에는 언어 문자가 이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언어 문자가 소용없다.
“세존께서 왜 꽃을 들어 보이실까”
대사일번(大死一番)이 요구된다. 사무치고 사무쳐서 나를 완전히 매몰시킨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면 천사량만계교(千思量萬計較)의 분별심이 쉬고 어느 순간 밝은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기실 꽃가지를 번쩍 들어 올린 것은 만고불역(萬古不易)의 진리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사고(思考)라는 분별의식 이전의 소식이며 본래의 마음바탕 그대로를 보여주신 모습이다.
자신의 참면목을 보려고 하는 수행자들은 이같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가르침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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