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우학스님의 무문관] 분별심 버리면 망념도 진성도 없어 - 제4칙 호자무발(胡子無鬚) - 달마대사는 수염이 없다

qhrwk 2023. 12. 31. 12:54

 

제4칙 호자무발(胡子無鬚) - 달마대사는 수염이 없다
 
(가) 본칙(本則)


혹암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서천의 오랑캐, 달마대사는 어찌하여 수염이 없는가?”
 
(나) 평창(評唱) 및 송(頌)
 
무문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참선은 반드시 실다운 참선이어야 하고 깨달음 또한 실다운 깨달음이어야 한다.
이 오랑캐는 꼭 한번은 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친견했다고 말한다면 이미 두 명이 되고 말리라.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

달마대사가 수염이 없다함은

밝고 밝은 것에 흐린 것을 덧씌우는 꼴.”
 
있고 없음에 끄달리지 말고 경계 초월해 살라는 메시지
 
(다) 설명
 
달마대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불자들에게 수염 텁석부리의 인물로 각인되어 왔다. 

스님들이나 화가들이 달마대사를 그릴 때에는 으레 빽빽한 수염을 턱 전체에 

갖다 붙인다. 

그래서 수염이 없는 달마대사는 아예 생각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턱수염의 이미지가 가득한 달마대사를 두고 혹암 큰스님은 다짜고짜 

달마대사가 왜 수염이 없느냐고 생뚱맞은 말씀을 하시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마치 나는 새를 쳐다보고 ‘어찌하여 날개가 없는가’하고 묻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고 보면 화두는 지천에 깔렸다.
자아정체성을 부정하는 모든 말들이 화두가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류의 화두가 그리 쉽게 해결 되지는 않는다.

‘달마대사는 어찌하여 수염이 없는가.’
참으로 말길이 끊어져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이 들어설 틈이 없다. 

수염이 없다고 해도 걸림이 되고 또한 있다고 해도 걸림이 된다.
걸림은 진성(眞性)의 자유와 위배된다. 

없다는 말에 걸리면 수염이 있는 것이 되고, 있다는 말에 걸리면 애시 당초 없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만다.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있고 없음에 끄달리지 말고 닥치는 경계를 초월해서 살아가라는 노파심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 선(禪)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은 학문이 아니고 실재적 수행이다. 

즉 실참이다. 

 

실참함으로써 실오가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참실오의 자리는 본래적인 마음자리이다. 

상대적인 분별과 대립이 쉰 곳에는 버려야할 망념도, 돌아가야 할 진성도 없다.
육조혜능스님은 신수스님의 게송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앉고 때 묻지 않도록 하라’는 

말에 대해서 “본래 한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먼지 앉고 때가 끼겠는가”하고 

근원적인 가르침을 제시한 적이 있다.
 
본래 성품은 청정무구한 하늘과 같아서 그 어떤 망상의 구름에도 초연할 뿐이다.
 
달마대사의 진신(眞身)은 무상(無相)이다. 유(有).무(無)의 차별경계에 떨어진 무상이 아닌, 

즉 유.무를 초월하면서도 유.무를 포용하는 실상(實相)의 무상을 말한다. 

이 무상의 달마대사를 친견하는 자리는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이 하나 된 곳이다. 

참된 친견은 자신이 그렇게 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묘수가 없다.
 
직접 확인하여 추호도 의심이 없으려면 달마대사의 본래면목과 계합하면 된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달마대사는 왜 수염이 없는가를.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