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우학스님의 무문관] 無자 화두는 1700공안의 결정판 - 제1칙 조주(趙州)스님의 무자(無字)화두

qhrwk 2023. 12. 31. 11:48

 

본칙(本則)


조주스님께 한 스님이 물었다. 

“저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없다(無).”
‘있다 없다’ 분별사량 내려놓고 대신근 대분지 대의정 일으켜야
 
평창(評唱) 및 송(頌)
 
무문스님이 평하여 말하였다. 

선(禪) 수행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마음길이 끊어지는 경험을 궁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마음 길을 끊지 못하는 이는 모두 풀잎이나 나무에 달라붙어 

사는 정령(精靈)과도 같다. 자, 말해보라. 

도대체 어떤 것이 조사의 관문인가? 

이 한 가지, 무자(無字)화두만이 선종의 제일관문이다. 

 

그래서 이를 일러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관문을 꿰뚫고 통과한다면 조주스님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의 조사들과 함께 손잡고 같이 다니며, 눈썹과 눈이 맞닿아 있듯이,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듣게 될 것이다. 어찌 경사스럽고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관문을 꿰뚫고 싶지 않은가?
 
삼백육십개의 뼈마디와 팔만사천의 털구멍을 가진 온몸 그 자체가 의심덩어리가 되어 

이 한가지 ‘무자(無字)’ 화두를 들되 낮이고 밤이고 잡도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무(無)를 허무(虛無)의 무로 여기거나, 유(有).무(無)의 무라고 여기지는 말라. 

꼭 시뻘겋게 단 쇳덩이를 삼켜 버려 토해 내려고 하여도 토해 낼 수 없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그릇된 지식과 잘못된 견해를 다 떨쳐 버리고 오래오래 잘 익히면 저절로 

안과 밖이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꾼 것처럼 스스로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해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체험이다. 

 

갑자기 의정이 타파되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할 것이다. 

꼭 관우장군의 큰 칼을 빼앗아 자신이 쥔 듯,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대자유를 얻고 육도와 사생의 세상에 있으면서도 유희삼매를 만끽한다.
 
이제 어떻게 공부를 지어갈 것인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이 무자(無字)화두를 들어라. 

만일 끊어지지 않는다면, 법의 등불에 한번 ‘확’하고 불이 붙어서 환한 경지가 될 것이다.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개의 불성에 대한 큰스님의 한마디는

온전하게 제시된 바른 가르침이네.

어리석게, 있고 없고를 따지면

몸도 버리고 목숨도 잃게 되리라.
 
설명
 
무자(無字)화두는 1700 공안의 결정판이다. 

어느 화두라도 깨치면 ‘무’자 화두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화두수행을 철저히 해보지 않은 미숙에서 비롯된 망발이다. 

무자 화두야말로 가장 난이도가 높으며 공부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무자화두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분별심(分別心)의 제거이다. 

불성이 있다, 불성이 없다라는 견해는 분별이다. 

분별은 사고의 체계이므로 다분히 주관적 인식이다. 

주관적 인식의 본질은 욕망이므로 분별심은 결국 욕망을 가져오고 중생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분별과 사량을 모두 놓아버리고 무고안온의 절대경지에 들어가려면 대신근, 대분지, 대의정을 

일으켜 밀어붙여야 한다.
 
‘개에게 왜 불성이 없는가?’ 

이 무(無)는 이미 유.무를 초월해 버렸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