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개 금 불사

qhrwk 2022. 3. 7. 08:03


[개금불사]

예전에 송광사에서 대웅보전 부처님 개금불사를 할 때 일입니다.
근처 계곡을 한 바퀴 돌아 포행을 하고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종무소 처마 밑으로 피했습니다.
마침 어떤 부부도 같이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비가 얼른 그치지를 않아 꽤 오래 함께 있게 되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기도 좀 그렇고 해서..
"거사님,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 무슨 일로 오셨어요?"
"송광사에서 개금불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접수하려고 왔습니다."
"저기 안내문에 보면 계좌번호가 있는데
송금을 하시지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어요?" 그랬더니
"스님, 부처님 옷을 입혀 드리는 공덕을 올리는데, 어떻게 제가 송금을 하겠습니까?
제가 가지고 오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직접 왔습니다."
순간 제 가슴에는 깊은 감동의 물결이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아, 정말 우리 불자님들은 이런 마음으로 시주를 하는구나!'
그분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러고 숙소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불자님들은 저런 마음을 내는데 나는 어떤가?
한 번도 개금불사나 봉안불사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네~'
그래서 이번엔 저도 개금불사를 해봐야겠다 하고 종무소로 가서
"개금불사가 얼마에요?" 물어보니 100만원이래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큰 금액인 줄 몰랐는데..
그때 제 통장에 잔고가 200만원 정도밖에 없었어요.
불사를 하려면 내 재산의 반을 내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고나서는 화두를 잡을래도 잘 안 되고
'전 재산의 반인데~ 전 재산의 반인데~' 
'시주하면 100만원밖에 안 남는데~' 온통 그 생각뿐이고..

나중에는 이렇게 됐어요.. '할까? 말까?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다고 했으니까 해야지.. 그러면 100만원 가지고 어떻게 살지?'
하루종일 그러고 있자니.. 저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습니다.
하도 괴로워서 도반스님한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스님, 불사는요.. 하려고 했을 때 탁 하는 거예요. 망설이지 마세요.
그게 뭐 그렇게 고민이에요? 마음을 낸 순간 그냥 하는 거예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 맞아!!'
그래서 과감하게 100만원을 탁 내고 개금불사 접수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보통 때처럼 108배를 올리려고 대웅보전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부처님이 갑자기 눈이 커지면서 "아이구, 효산이 왔냐?" 그러시는 거 같았어요.
"아이구, 전 재산의 반을.. 그래 내 옷 입히는 데 줬단 말이냐! 착하다, 착해~"
정말 따뜻한 눈길로 감싸 안아주듯 바라보시는 거 같았어요.
그 순간 알았어요. '불자님들이 이런 마음에 불사를 하는구나~
정성스럽게 올린 공덕으로 마음이 순수해질 때, 큰 보람을 느끼는구나~'
저는 출가를 하고 5년이 지나서야 불자님들 덕분에
시주의 기쁨, 보시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선업은 그 자체로 쫗은 씨앗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 '나는 겸손한 사람이고 베푸는 사람이니까
남들은 좋은 밭에 심어도 나는 자갈밭에 심어야지~' 그러느냐?"
"아닙니다, 부처님. 좋은 씨앗은 '아, 어디가 좋은 땅이지?' 
하루 이틀 살펴서 가장 좋은 곳에 심습니다."
"선업도, 보시의 공덕도 그와 같다.
어디가 더 좋고, 어디가 더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지 찾아 다니고, 
이미 그 보시 속에는 지혜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시바라밀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되는 
금강경의 오묘한 이치가 그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효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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