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전도시-이덕무
금척(金尺)으로 정한 우리 강산 일만리
한경(漢京)의 웅장한 모습 황도(黃圖) 속에 담겼네
한 폭의 황도 대도회를 그렸는데
역력하게 펼쳐져 손슴을 보는 것 같네
조선왕조 만세토록 기틀 흔들리지 않고
번화한 문물 모두 다 여기에 있네
- 이덕무 「성시전도시」 -
수도 한양을 노래하는 문화는 정조시대에 절정을 맞이합니다.
정조는 1792년 신하들에게 번성하는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를
지어 바치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한양의 지세, 연혁부터 시끌벅적한 시장풍경, 유흥문화 등
당시 일상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왕도(王都)를 이렇게 대규모로 조감한 시도는 전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갖가지 개혁과 탕평을 통해 정국의 화합을 도모했던 정조는 찬란한 태평성대를
기록하게 함으로써 백성의 실정을 살피는 한편, 왕권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북학파 실학자들의 시각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18세기 역동적인 한양의 모습을 세밀하게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성시전도시 시권, 1792년, 이집두
승정원 우승지 이집두(李集斗)의 시다.
보통 성시전도시가 문집에 실려 전하는 데 반해 당시 시권(試券, 시험답안지)
원본의 형태로 남아 있다. 정조로부터 차상(次上)의 점수를 받았으며 상으로
종이 한 권을 받았다. 칠언백운고시로, 전반부는 구폭요도(九幅瑶圖),
후반부는 성시전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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