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상대 위해 사랑만 하면 훌륭한 자비”

qhrwk 2024. 10. 30. 07:57

 

♣“상대 위해 사랑만 하면 훌륭한 자비” ♣

번뇌 고통은 미혹의 사랑서 출발 사랑 해결하면 인생 문제는 풀려 나의 산책
코스에는 비닐하우스들과 외딴집들이 있다. 외진 곳이라서 개를 키우는 이들이
많다. 여섯 마리의 개를 통과해야 산책을 마칠 수 있다. 걷다 보면 깊은 사색에
 빠져 드는데, 개들이 짖어대면 분위기가 망가진다.

그래서 나는 개들에게 뇌물을 쓰기로 했다. 아주 얇은 알루미늄 통에 든 개밥과
 소시지 조각들을 구했다. 지날 때마다 먹을 것을 주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개들의 태도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알루미늄 통에 든, 좀 비싼 먹이를 준 다음에는 앞다리를 들고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반긴다. 그러다 보니 개들과 나는 점점 정이 들어갔고, 개밥을 주기 위해서
산책을 거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닐하우스를 지나는데, 항상 나를 반겨주던 개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음날에도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하는 이에게 물었다.

그 부근이 아파트 건립지역으로 지정되고 보상이 끝나서, 비닐하우스들을 모두
철거해야 하기 때문에, 개가 이사를 갔다고 한다. 다른 개들도 여러 마리 있지만,
작별인사도 없이 떠난 그 개가 더욱 보고 싶어졌다. 개가 있던 자리를 지날 때마다, 뭔가 휑하니 빈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감상도 들었다. 개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주는 쪽이고, 개는 나를 기다리며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보다 개의 마음이 더 아플 것이다. 나의 장난기 섞인 음식 뇌물이 결과적으로 개를 괴롭게 만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외로워, 미워하는 마음은 더욱 괴로워. 사랑에 빠지지 말자. 미움의 뿌리가 되기
쉬우니…”라는 유행가 노랫말이 새롭게 귀에 들어온다.

나는 그 노래가 부처님 말씀에 곡만 붙인 찬불가의 하나로 생각했다. 나는 개와
사랑을 나눈 것도 아니고, 저 개와의 이별 때문에 심하게 괴로움을 느끼지도 않지만, 저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의문이 든다. 사랑과 자비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 우리 중생들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문제는 ‘무명(無明)’ 즉 ‘미혹’과 ‘갈애(渴愛)’ 즉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듯이
집착하며 매달리는 사랑’이다.

미혹과 갈애는 한 몸통을 양면에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혹은 갈애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갈애는 미혹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미혹의 갈애’ 또는
‘갈애의 미혹’이라고 붙여서 말할 수도 있다. 모든 번뇌 망상과 고통은 저 미혹의
사랑으로부터 생긴다. 사랑이 없다면 미혹하지 않을 것이고, 미혹하지 않다면 피차에게 고통을 주는 집착하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문제를 해결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푸는 것이 된다. 해탈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출가 구도자들은 입산하는 순간부터 ‘할애사친(割愛捨親)’ 즉 “애정을 단칼로 자르고, 속세의 업으로 친숙한 이를 멀리하라”는 말을 무수히 듣는다. 사람들은
 “출가자들이 냉정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저 말이
머릿속에서 항상 보초를 서고 있기 때문이리라. 돌이켜 보니 나는 일생을 아주
비겁하게 살아왔다.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 나를 주어 보지도 못했다. 아주 약삭빠르고 이기적으로 산 것이다.
나만을 위해 나만을 지키며 산 것이다. 개와 이별하고 저 노래를 들으면서도, 쓰라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훈련된 이기심’이 무척미안하다. 창피하다. ‘자비’ ‘사랑’ 이 두 단어를 양손에 들어본다.

사랑에서 ‘미혹의 집착’을 빼고, ‘오직 주기 위해서’를 더하면 그대로 자비가 될 것이다. 어리석지도, 집착하지도, 사랑의 보답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저 상대를 위해 사랑만 한다면, 그처럼 훌륭한 자비가 어디에 있겠는가. 불교의 궁극 목표는 성불 즉 최고의 깨달음이다.

그 지혜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자비이다. 자비 없는 지혜는 가짜이다. 육바라밀의 첫째 항목이 보시이다. 반야가 목표이지만 그것도 보시로
 나타나야만 진짜이다. 육바라밀의 다른 실천 항목들도 마찬가지이다.

지명스님 / 괴산 각연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