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걷고 줍는 스님, 마지막 길을 나서다 2.

qhrwk 2025. 1. 15. 07:24

 

 

♣걷고 줍는 스님, 마지막 길을 나서다 2.♣

신발을 척 보여 주시며 이 신발은 좀 비싼거라고 농담삼아 자랑삼아 말씀하시는데, 

북한산 무슨 등산용품 가게에서 300싸이즈 신발이 워낙 안 나가다 보니 두고 두었다가 

스님 발 싸이즈가 300인 것을 아시고 원래 비싼거지만 너무 싸이즈가 커서 안 팔린다고 

스님이 사시려면 2만원에 드리겠다고 하여 냉큼 사서 신고 오는 중이라고 하신다.

그 신발 위로 스님의 육중한 몸이 날듯 뛰듯 길 위를 자유로이 흘러가고 있다.
홀로 길을 출발하셔서 철원 즈음에선가 길벗을 한 분 만나 이제 둘이 되었다
하시는데, 이제 전역을 몇 일 남기지 않은 군인 원사님께서 당신의 군생활을
회향하는 의미로 스님과 함께 당분간 걷기로 하신 것이다.

안동포에서 평화의 댐 쪽으로 걸어오는 길은 비무장지대 쪽이라 화천 쪽에서 운행하는

관광용 버스가 때때로 지나갈 뿐 거의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그야말로 자연의 길이다. 

길 우측으로는 평화의 댐에 이르는 호수같은 강 상류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햇살도 좋고, 호수위로 비춰진 하늘도 높고 맑다. 걷기 좋은 날.. 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터벅 터벅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스님께서 저기를 보라며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가르치시는데, 재법 큰 맷돼지 

3마리가 저 앞길을 가로질로 산 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마음 한 켠에 야생의 성품이 되살아나듯 짠한 또 찐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야생이 살아있는 곳은 야생의 생명체들이 이렇듯 끊임없이 생명을 꽃피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 조차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곳곳의 산이 허물어 져 있다.
스님 말씀이, 매년 그렇게 걷다 보니 개발과 발전의 속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신다. 
얼마나 개발 속도가 빠른지, 예전에 걷던 길이 없어지고 쭉쭉 뻗은 4차선 도로 같은 것들이 새로 
생기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비좁지만 투박하고 정겨운 우리 옛 길을 시간과 함께 

하나 둘씩 잃어갈 때마다 고향을 잃은 듯 허하고 헛헛한 느낌을 감출 수 없으시다고.

스님께서 첫 발걸음을 강원도 전방지역 쪽으로 그것도 될 수 있으면 비무장지대 쪽을 

경유하면서까지 다니시는 이유는 그래도 강원도 쪽이나 비무장지대 쪽이 덜 오염되고, 

덜 개발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럼 그럼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야생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을 걷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하늘을 닮아가고 바람을 닮아가며 

숲을 닮아가게 마련이니까.

숨을 크게 몰아 쉬시면서 '아~ 달다. 아~ 맑다'를 연발 내뱉으신다. 

길 가에 갯버들, 버들 강아지가 봄 소식을 전해주며 길을 걷는 이를 반겨준다. 

12시가 조금 넘어 평화의 댐에서 공양을 간단히 하고는 계속 걷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나오면서부터 스님과의 대화도 저절로 침묵으로 바뀌고 이제는 한 발 한 발 걷는 

순간만이 있다. 

 

오르막이 계속되면서 숨도 가빠지고 조금씩 땀도 나고 모처럼의 걸음이라 다리도 묵직해오는데,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시작된 스님의 침묵이 어느덧 경행 수행의 삼매로 바뀌셨는지 지금 

저 노구를 이끄시고 오르막을 오르시는 스님이 맞으신가 싶을 정도로 속도를 내시면서 

가볍게 가볍게 걸어오르신다.

정상 즈음에 이르러 이제 한 숨 좀 돌리려나 싶었는데, 약 2km가량 되는 정상의 터널을 하나 

지나가면서 그 긴 터널을 숨도 안 쉬시고 한 숨에 뛰듯 날듯 발이 안 보이게 내달려 질주하시는데 

깜짝 놀라 정신 바짝 차리고 나도 함께 뜀걸음으로 내달려 터널을 뚫고 나오자 멀뚱 멀뚱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은 내 표정에 미소를 지으시며 한말씀을 건네신다.

"어떤가. 여기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직 걷는 것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해" 스님 눈빛을 바라보며 

한바탕 미소로써 법문을 깊이 새겨두었다. 

될 수 있으면 아스팔트 큰 길로 가기 보다는 산길로 가려는 생각 때문에 길도 잘 나 있지 않은 

산 길로 들어섰다. 

역시 아스팔트 길과 산길은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 산길로 들어서니 봄소식도 더 가깝게 느껴지고, 

땅 위에도 살아 숨쉬는 동식물들의 흔적들이 생생하다.
풀 숲 사이로 초록의 생명들도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고, 산양 똥에, 멧돼지 똥, 하고도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까지. 자작나무 숲 안에 생명들의 야생스럽고도 자유로운 살림살이가 펼쳐진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