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앉아 있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좌선坐禪이라 한다.
그대들은 잘못 알지 말라.
나는 그대들이 경전이나 주석서를 이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대가 국와 대신이라도 인전하지 않으며, 폭포와 같은 말재주를 가졌더라도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대들의 진정한 견해만을 바랄 뿐이다.
<임제록>
모든 기성의 권위도 사회적인 지위도 교양이나 지식도 전제함 없이.발가벗은 인간으로서
그 무엇에도 속지않을 바른 견해만을 문제삼은 것.
이것은 불타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뒤 최초의 설법을 통해 정견正見을 강조한 것과 일치한다.
선禪은 또 명구名句를 거부한다.
명구란 사물의 명칭이나 자식을 가리킴인데,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사실을 추상하고 귀납해
거세기켜버린 껍데기만을 관념이다.
그래서 경전이나 어록까지도 한낱 휴지 취급을 한다. 종교 그 자체에서의 해방이다.
설명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살아 있는 진리를 자기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려는 것.
진짜 종교는 자기 안에 있는 진리를 분명하게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다.
선승 임제는 영원한 젊음을 지닌 자유인이다.
젊은 선승 마조馬祖가 남악 회양南嶽懷讓 선사 아래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선사가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좌선합니다."
"좌선은 해서 무엇 하려고?"
"부처가 되려고 좌선하지요."
그 이튿날 회양 선사는 마조가 좌선하고 있는 곳 앞에 가서 벽돌을 득득 돌에 갈았다.
마조는 이상히 여기고 물었다.
"스님, 벽돌은 갈아서 무얼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 거야."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니요?"
"그래, 앉아만 있으면 부처가 될 줄 아는가?"
이 말에 마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님,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소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수레를 때려야겠는가, 소를 때려야 겠는가?
선은 앉거나 눕는 데 상관없는 것이며, 부처는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 아니야.
집착이 없고 취하고 버릴 게 없는 것이 선이지!'' 이 말 끝에 마조는 크게 깨달았다.
<전등록 傳燈錄>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함도 아니고 청정에 접착함도 아니며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아니다.
움직이지 않음(不動)을 닦으려면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남의 옳고 그름과 선악과 허물을 보지 말아라.
이것이 자성自性의 움직이지 않음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몸은 움직이지 않으나
입을 열면 남의 시비장단과 좋고 나쁨을 말하니 이것은 도道를 등지는 짓이다.
마음에 집착하거나 청정에 집착하면 곧 도에 막히니라.
<육조단경 좌선품 坐禪品>
그러면 좌선이란 무엇인가.
밖으로 온갖 선악의 환경에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안으로 자성自性을 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육조단경 좌선품>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坐禪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속에 살면서도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 한다.
생각이 쉬어버린 무심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좌선이라 한다.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 한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드는 것을 좌선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앉을 수 있다면 이는 부처님이
인정하는 좌선일 것이다.
<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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