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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청빈의 향기

♣ 1. 눈 고장에서 - 청빈의 향기♣ 겨울 산에서는 설화雪花가 볼 만하다. 바람기 없이 소복소복내린 눈이, 빈 가지만 남은 나무에 쌓여 황홀한 눈꽃을 피운다. 눈이 아니라도 안개가 피어오른 자리에는 차가운 기온 때문에 가지마다 그대로 얼어붙어 환상적인 눈꽃을 피운다. 마치 은은한 달빛에 만발한 벚꽃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잎이 져버린 빈 가지에 생겨난 설화를 보고 있으면 텅 빈 충만감이 차오른다.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는 빈 가지이기에 거기 아름다운 눈꽃이 피어난 것이다. 잎이 달린 상록수에서 그런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기에는 이미 매달려 있는 것들이 있어 더 보탤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 도반인 그는 맑음을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생활 공간인 방에 들어가보면,아무..

무소유(법정) 2022.02.27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내가 사랑하는 생활

♣ 1. 눈 고장에서 - 내가 사랑하는 생활♣ 눈이 내리려는지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고 골짝에서는 차가운 기류가 올라오고 있다. 서둘러 읍내 철물점에 가서 눈 치는 가래를 하나 사왔다. 이곳은 눈 고장이라 다른 데에 없는 연장들이 있다. 손잡잇감이 마땅치 않아 손수 만들지 않고 가게에서 사온 것이다. 난로에 장작을 모아 놓으면 활활 타오르는 소리도 좋지만,한 참 있으면 난로 위에 올려 놓은 돌솥에서 물 끓는 소리 또한 훈훈한 실내의 정취를 아늑하게 거들어준다. 산에 살면 오관 중에서도 특히 청각이 예민해지는데, 한밤중에 기러기떼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깰 때가 더러 있다. '솨솩 쇄쇗 솨솩 쇄쇗....'풀이 선 옷깃이 스치는 듯한 이 소리. 이 오밤중에 추위를 피해 남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의 날갯짓..

무소유(법정) 2022.02.27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

♣ 1. 눈 고장에서 - 수행자에게 보내는 편지♣ 묵은 편지 받고 회신이 늦었다. 마음의 길은 열려 있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여기고 있다. 혼자서 겨울 준비를 하고 있을 처지를 생각하고 사연을 띄운다. 깊은 밤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문득 양관良寬선사의 시가 떠오른다. 고요한 밤 초암草庵안에서 홀로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가락은바람과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그 소리 시냇물과 어울려 깊어간다 물소리 넘칠 듯 골짝에 가득 차고 바람은 세차게 숲을 지나간다 귀머거리가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 희귀한 소리를 알아들으랴. 옛사람들도 한결같이 말했듯이,도(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해야 한다. 지닌 것이 많으면 도에 대한 뜻을 잃어버린다. 가난해야만 도에 가까이할 수 있다. 소유를 필요한..

무소유(법정)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