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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등잔불 아래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봄나물 장에서 1. 눈 고장에서 - 등잔불 아래서 겨울 안거를 마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며칠 동안 어정거리다가 돌아왔다. 전등불이 밝은 데서는 어쩐지 몰랐는데, 다시 등잔과 촛불을 켜게 되니 이곳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문명의 이기利器란 편리하다. 전기만 하더라도 인간이 발명해낸 여러 가지 문명의 연장들 중에서큰 몫을 차지해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쾌적하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산중이건 섬이건 전기가 안 들어간 곳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내 오두막에는 전기가 없다. 나는 이 점을 오히려 다행하게 여기고 있다. 그 전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전기를 끌어들였을 것이다. 내가 20년 전 옛터에 암자를 새..

무소유(법정) 2022.02.27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겨우살이 이야기

1. 눈 고장에서 - 겨우살이 이야기 내 오두막에는 유일한 말벗으로 나무로 깎아 놓은 오리가 한마리 있다. 전에 살던 분이 남겨 놓은 것인데 목을 앞으로 길게 뽑고 있는 것이 그 오리의 특징이다. 누구를 기다리다 그처럼 목이 길어졌을까. 방 안 탁자 위에서 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 그야말로 학수고대鶴首苦待의 모습이다. 종일 가야 말 한마디 할 일이 없는 나는 가끔 이 오리를 보고 두런두런 말을 건다. 끼니를 챙기러 나갈 때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려고 방을 나설 때 "나 공양하고 올게," "군불 지피고 오마," 하고 알린다. 외출할 때는 "아무데 다녀올 테니 집 잘 보거라," 하고, 돌아와서는 "나 다녀왔네. 잘 있었는가?"하고 안부를 묻는다. 오리는 그저 듣기만 하고 대꾸가 없다. 그러나 내게는 허공을..

무소유(법정) 2022.02.27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 눈 고장에서 - 거룩한 가난

♣ 1. 눈 고장에서 - 거룩한 가난♣ 새삼스런 생각이지만 불을 맨 먼저 찾아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수인씨燧人氏가 됐건 프로메테우스가 됐건, 불을 발견한 것은 오늘의 인류사회를 낳게 한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얼어붙은 겨울에 만약 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무를 먹고 온기를 발산하는 난롯가에 앉아 장작 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얼어붙은 개울에서 도끼로 얼음장을 깨고 물을 길어와 난로 위에 올려 놓는다. 솔바람 소리를 내면서 차관에서는 이윽고 물이 끊는다. 어느 세상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리인가. 바람을 마시고 사는 처마 끝의 풍경이 자기도 집 안으로 좀 들어갈 수 없느냐고 이따금 오들오들 떨면서 땡그랑거린다. 업이 달라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처지가 안..

무소유(법정)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