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6813

[산에는 꽃이 피네 ] (6) 행복의 조건

행복의 조건 가끔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 볼 일이다. 자신의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의 그 빈자리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암자에 돌아오니 둘레에 온통 진달래꽃이 만발하였다. 군불을 지펴놓고 닫겼던 창문을 활짝 열어, 먼지를 털고 닦아냈다. 이끼낀 우물을 치고 마당에 비질도 했다. 표정과 생기를 잃었던 집이 부스스 소생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아야 집도 함께 숨을 쉬면서 그 구실을 하는 모양이다. - 법정 스님 수상집 중에서 * 언젠가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가져온 작은 등잔 하나를 법정 스님께 선물한 적이 있다. 그것을 드리면서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등잔이 보잘 것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단순한 곡선과 소박한 모양에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히말라야 등잔이지만, 스님의 처소에 그것이 번..

무소유(법정) 2022.01.26

[산에는 꽃이 피네 ] (5) 지혜로운 삶의 선택

지혜로운 삶의 선택 며칠동안 비가 내리고 안개가 숲을 가리더니 수목들에 물기가 배었다. 겨울동안 소식이 묘연하던 다람쥐가 엊그제부터 양지쪽 헌식돌 곁에 나와 내 공양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해 늦가을 무렵까지 윤기가 흐르던 털이 겨울을 견디느라 그랬음인지 까칠해졌다. 겨우내 들을 수 없었던 산비둘기 소리가 다시 구우구우 울기 시작했고, 밤으로는 앞산에서 고라니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 치고 있다. 나는 한밤중의 잠에서 자주 깨어 일어난다. 이런 걸 가리켜서 사람들은 봄의 시작이라고 한다. -법정 스님 수상집 중에서 *여러 해 동안 법정스님을 뵙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은 그분이 가진 정신 세계가 저 티벳인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에 매우 근접하다는 것이다. 그분의 얼굴 모습도 내가 여..

무소유(법정) 2022.01.26

[산에는 꽃이 피네 ] (4) 가난한 삶

가난한 삶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 법정 스님 수상집 중에서 *십 년 전 내가 법정 스님을 뵈러 불일암으로 찾아갔던 것은 사실 어떤 깨달음의 말씀이나 진리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인도와 외국의 여러 가르침들로 머리가 포화 상태였고 , 사실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다한 지식의 문제에 걸려 넘어지고 있..

무소유(법정) 202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