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의 경지를 나타낸 2편의 글◈
1. 나를 쳐라.
스님께서 마정령 밑에 초동들이 떼를 지어 노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얘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릅니다."
"그러면 나를 보느냐?"
"예, 봅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나를 모르면서 어떻게 나를 보는냐?"
하면서 지팡이를 주며
"너희들이 만일 이 지팡이로 나를 치면
과자값을 듬뿍 줄 것이다"라고 하자
그 가운데 영리한 아이가 앞으로 나와서
"정말입니까?" 하고 지팡이로 스님의 머리를 치자 스님이 또
"나를 쳐라!" 하니 아이가 또 쳤다.
"그런데 어찌 나를 치지 않느냐?
만일 나를 친다면 부처도 치고 조사도 치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와
천하 노화상을 한 방망이로 치게 되리라."
스님의 말에 아이가 화를 벌컥 내며 말하기를
"이미 쳤는데 치지 않았다고 하시니 스님이 우리를 속이고
과자값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스님이 돈을 주면서 이르기를
"온 세상의 혼탁함이여 나만 홀로 깨어 있구나.
숲 아래 남은 여생 그럭저럭 보내리라" 하였다.
2. 대중에게 보이다
나는 하루 종일 옷을 입고 있어도
실 한 올도 걸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밥을 먹었어도 쌀 한 톨 씹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재앙이나 복, 삶과 죽음이란
결국 아무것도 없는 무와 같아서
세상에 마음대로 맡기고도 아무 일이 없으니
이것을 두고 일을 마친 사람이라 한다.
대개 참선이라 함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집안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또한 바깥세상의 헛된 것에 뒤섞이지 않으며
생과 사에 어지러이 끌러다니지 않는 것이다.
결국 참선이란 얽매임도 아니며 벗어남도 아니며
또한 번뇌도 열반도 아니다.
일을 마친 사람은 때로는 부처와 중생,
하늘과 땅과 대지를 부수어 한 티끌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저마다 제자리에 머무르게 하며
어떤 때에는 자리를 바꾸는 등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한다.
이것을 부사의대용(不思義代用)이라 하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이라고도 한다.
일을 마친 사람은 생사를 생각할 것도 없으며
열반을 증득할 것도 없이 마음대로 놀며,
인연 따라 걸림없이 모두 진실하다.
이것이 부처의 밝고 밝은 한 조각 본래면목이다.
일을 마친 사람은 편안하고 쾌활하고 밝다.
항상 열린 문을 드나들듯이 천당과 부처님 세계를 뜻대로 하니
헛된 꿈과 마음의 괴로움에 속박될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 사람의 본심 그대로이며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다.
청컨대 만일 고양이를 그린다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리라. 하하.
'불교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생이 중생일 수밖에 없는 까닭 (0) | 2024.10.29 |
---|---|
12 인연 ( 十二因緣 ) (0) | 2024.10.29 |
병과 고통은 다 이유가 있다 (0) | 2024.10.29 |
참다운 공空은 묘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0) | 2024.10.27 |
일체 사물 스승으로 여겨야 (0) | 202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