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스님의 소리 없는 소리/거지에게 탁발하시다◈
봉암사에서의 일이다. 장말철이라서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스님께서 우산을 쓰고 나가셨다가 한참만에 흠뻑 젖은 채로 돌아오셨다.
방문을 열고서 태평스럽게 있는 시자를 보고 말씀하셨다.
"절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큰비가 올 때는 도량을 한 번
내다보는 거다.배수는 잘 되는지 법당문이 열려 비가 들이치지는 않는지.
객(客)처럼 아무 관심도 없이 살아서는 안된다. 설령 그 절
주인이 아니고 어디 가서 하룻밤을
묵는 객의 입장이 되더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다."
비오는 날이 아니더라도 스님께서는 규칙적으로 하시는 일과가 있었다.
밤 12시나 1시쯤 되면 손전등을 켜지 않은 상태로 도량을 한번
돌고 나서 다시 조실채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주지 "스님. 저는 평생 주지 같은 건 안 할 겁니다."
"주지도 해야 할 땐 해야
한다. 공부 챙기면서 안정이 되면, 일이 닥쳐서는 하는 거다."
#주지 잘 하는 법 "주지 살이는 어떻게 하면 잘 합니까?"
"무덤덤하게 하면 된다."
#중노릇 잘 하는 법 "어떻게 하면 중 노릇을 잘 하겠습니까?"
"노인네처럼 하면 된다."
#차 평소 스님께서는 차를 드시지 않았다. 제자들이 여럿이서 차를
마시는 것을 보시면 탐탁치 않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거 중이 뭐하러 먹냐?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차 마시며 앉아서 잡담할
시간은 있느냐? 차라는 것이 좋긴 좋은 것이지만 공부하는
수행자들한테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거다."
#창조주 하루는 시자가 물었다.
"창조주가 있습니까?" "없다." 다른 날 시자가 다시 물었다.
"창조주가 있습니까?" "팔만사천의 신이 있지."
"오늘은 왜 있다고 하십니까?" "그 많은 신은 니 마음이 만든 거지."
#침류(枕流) 봉암사에는 '침류교(枕流橋)'라는 다리가 있다.
하루는 시자가 스님을 모시고 이 다리를 건너다가 여쭈었다.
"스님. 침류(枕流)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흐르는 물을 베고 있다는 뜻이다.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너는 알겠느냐?" "......."
#평생의 교훈 "평생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을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중은 걸사(乞士)다. 무소유(無所有)로 살아라. 어디 가서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기라도 달갑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송장이다. 화두가 생명이니 이를 놓치지 말거라."
#거지에게 탁발하시다.
1 하루는 스님께서 탁발하러 가셨는데, 마을 집으로 향하지 않으시고 마을
어귀 거지촌에 이르시었다. 짚으로 엮은 움막문을 들어올리고는 요령을
흔들며 염불을 하시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던 거지가 깜짝 놀라서 말문을 열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염불을 마친 스님은 빈 발우를 내밀며 "적선(積善)하시오."라고
하였다.
당황한 거지는 "우리는 줄 것이 없습니다. 방금 전에 먹다 남은 주먹밥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라도 좋으니 적선하시오." 그러자 거지는 한쪽 구석에서 작은 주먹밥
뭉치를 스님께 내밀었다. 스님이 그것을 걸망에 넣고 돌아서시는 순간,
그 거지의 얼굴에서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뒷날 스님께서는 회상하시면서
"그런 행복한 얼굴을 그 전후로 보기 힘들었다."고 회상하셨다.
스님께서는 쉽게 탁발을 하시곤 했다. 준수한 용모와 수행력에서 우러나는
위엄과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염불소리를 갖추신 까닭이었다.
50년대 그 어려운 시절에는 거지가 그리도 많았다고 한다.
하루는 스님이 탁발을 다니시는데 거지들이 줄줄이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스님. 사람들이 스님에게는 돈과 음식을 잘 주면서도 우리 거지들에게는
잘 주지 않으니 스님이 탁발하시면 우리에게 좀 나누어 주시오."
스님이 가시던 길을 돌아보시며
"그대들도 복을 좀 짓지 않겠나?" 하시면 오히려 거지들에게 빈 발우를
들이미셨다.
"아니, 우리 같은 거지들에게 얻을 게 뭐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오?"
"귀한 것을 구하는 것이 나니네. 뭐라도 좋으니 조그마한 복이라도 지으시게."
"우리에게 먹다 남은 부스러기 과자가 있으니 이것도 괜 찮겠습니까?" 하며
내놓았다. 스님은 "좋구 말구" 하시며 그들이 내미는 때묻은 과자를
너무나도 맛있게 드시었다.
"별 이상한 스님을 다 봤구먼. 그나저나 평생 처음 남에게 베푸는
일을 해 봤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구먼."하고
좋아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서암스님의 가르침[소리없는 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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